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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이준용 대림 명예회장이 여천NCC에 간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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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18면

이찬원 중앙일보시사미디어 기자

서울 남대문로 상공회의소 빌딩에 본사가 있는 여천NCC. 이 회사 기획팀의 김모 팀장은 팀원들과 회식을 한 지 6개월이 훨씬 넘었다. 지난 9월 10일 어렵사리 저녁 자리를 마련했지만 공교롭게도 여수 공장에서 대림 출신 직원들이 몰려와 ‘상경 시위’를 하는 바람에 자연 취소됐다.

‘한 지붕 두 가족’ 쉽지 않네 #“화학회사서 ‘화학 결합’이 안 돼”

여천NCC 기획팀에는 모두 13명이 일한다. 이 가운데 여직원을 빼고 대림 출신이 6명, 한화 출신이 5명이다. 한화 출신인 김 팀장 바로 위에 대림 출신의 기획담당 임원이 있다. 기획·관리·생산·영업을 총괄하는 네 명의 임원 위로는 대림과 한화 출신 공동대표이사가 있다.

이 회사는 대림 출신 임원이면 팀장은 한화 출신이 맡고, 그 아래는 다시 대림 출신 직원이 배치되는 이른바 ‘지그재그’ 조직이다. 그것도 3년에 한 번씩 간부를 교체하도록 돼 있다. 핵심 요직인 재경팀장·감사팀장 자리는 서로 상대방 회사 간부를 배치하게 돼 있다.

사내에서 ‘YNCC 헌법’으로 불리는 ‘합병 합의서’가 만들어낸 보기 드문 풍경이다(YNCC는 여천NCC의 영문 약자). 회사 측은 “견제와 균형을 위한 조직”이라고 설명하지만 부드러운 술자리 한 번 갖기가 부담스러운 모양새다. YNCC 헌법은 25년간 유효하게 돼 있다.

발목 잡는 ‘YNCC 헌법’

여천NCC의 출발은 상쾌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정부 주도의 빅딜 열풍이 불던 1999년,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과잉투자로 위기에 몰렸던 대림과 한화는 자율 빅딜에 합의한다. 고교(경기고) 선후배 사이인 이준용 대림 회장(현 명예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그해 4월 양사의 나프타 분해 센터(NCC)를 통합한다는 데 합의했고, 8개월 후 여천NCC가 탄생했다.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이 50%씩 자본금을 댔다.

겉으로만 보면 여천NCC는 두 회사에 귀하디귀한 ‘옥동자’다. 에틸렌·프로필렌 등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연 180만t으로 아시아 1위다. 올해 매출이 4조4000억원에 이르러, 출범 당시보다 덩치가 두 배나 커졌다. 모회사인 대림산업과 한화석유화학은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여천NCC가 생산한 기초 원료를 제공받는다. 중국 특수를 만나면서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수출한다. 2003년부터 두 회사는 매년 꼬박 1000억원대 배당금도 챙기고 있다.

그러나 허니문 기간도 거의 없이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합병의 명분이 됐던 ‘과잉투자’ ‘과잉생산’ 논란은 중국 특수가 생기면서 미래를 예견한 ‘탁월한 결정’이라는 찬사로 바뀌었지만 ‘결혼 생활’이 문제였다. 서로 ‘살길을 찾는다’는 목표는 일치했지만 결혼은 그 자체로 ‘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껏 살아온 문화도 맞지 않았고, 앞으로 살아갈 준비도 부족했다.

사태가 불거진 것은 2001년 노조 파업 대응을 놓고서다. 노조가 파업을 선언하자 이준용 회장이 발 벗고 나서 유화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화 측은 “불법 파업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이때 이 회장은 김 회장에게 “제발 한 번 만나달라”는 신문광고 공세까지 펴면서 틀어졌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강성 간부 간 극한 대결도 갈등을 부채질했다. 2005년 여수 공장에서 대림 출신 간부가 자사 출신 생산직 사원의 승진을 상신하자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한화 측 임원이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반발한 대림 출신 간부가 술자리에서 소주병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는 전언이다. 회사 관계자는 “이때부터 서로 견원지간이 됐다”고 회고했다.

본사 이전도 시빗거리였다. 합병 당시 여천NCC는 본사를 서울 시청 앞 한화 소유의 프라자호텔 별관을 쓴다고 합의했으나 대림 출신들이 “한화 계열사 같아 불편하다”고 반발했다. 결국 2005년 상공회의소 빌딩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 빌딩 같은 층에 대림코퍼레이션 등 대림 계열사가 입주했다. 한화 출신들은 “그러면 우리가 대림 사옥에 들어온 것 아니냐”며 수군거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력 구성 때문에 갈등이 잦았다. 이 회사의 임직원은 모두 920여 명. 대림 출신이 70%가 넘는다. 합병 합의서 간부 조직을 50대50으로 구성한다고 합의했으니 대림 출신으로선 불만이 많다.

지난 9월 10일 사태도 이것이 발단이 됐다. 대림 출신 직원 60여 명이 한화 출신인 이신효 공동대표 집무실에 몰려와 “대림 출신의 진급 비율을 높여달라” “대림 측 직원들의 승진자 선발에 관여하지 말라”는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이 대표가 e-메일을 통해 “이는 사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관련자를 징계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대림 출신 관리자들이 반박성명을 냈고, 대림 출신의 공동대표인 이봉호 사장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진통을 겪다가 이준용 명예회장이 등기이사로 컴백한 것이다.
 
통합 없는 대등 합병은 필패

오너까지 나섰지만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관계자들은 많지 않다. 애당초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전무는 “현재 여천NCC는 대등 통합에 따른 조직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른 상태”라며 “기업 간 하드웨어의 통합이 소프트웨어의 통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김 전무는 “강력한 양대 주주 기업이 버티고 있어 여천NCC는 사실 인수합병(M&A)이라기보다는 ‘합작 경영’에 가깝다. ‘제한된 동거’를 하면서 화학적 결합을 철저히 외면했다”고 진단했다.

대등한 합병은 전 세계적으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최근 9년여의 합병관계를 청산한 다임러-크라이슬러(98년)나 굴지의 미국계 은행인 웰스파고-퍼스트 인터스테이트(96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문호 미국 UCLA 연구원(경영학)은 “다임러와 크라이슬러는 각각 유럽과 미주, 고급차와 대중차로 시장을 쪼갠 다음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며 “이런 오판이 결합 실패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도 서울-신탁은행(76년)의 합병이 실패 사례로 꼽힌다. 정부 의지에 의해 합병된 두 은행은 20년이 넘도록 출신 은행 간 파벌싸움을 벌인다는 비난을 받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하나은행에 흡수됐다.

동서대 이장희(경영학) 교수는 “대등 합병일수록 중요한 것이 합병 후 통합(PMI·Post-Merger Integration)이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제품·프로세스 등에 걸쳐 사업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비전과 정보의 공유는 기본, CEO의 통합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경험적으로 봤을 때 통합 없는 대등 합병은 대개 실패했다. 한쪽이 주도권을 쥐고 이른 시간 안에 상대방을 장악하는 것이 현실적이다”고 지적했다.
 
‘게임의 룰’ 미리 정해둬야

여천NCC 김 팀장이 앞으로 팀원들과 여유 있게 회식을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와 관련, 김경준 전무는 “이제라도 (회사를)떼어내는 게 맞다. 그렇지 않다면 한쪽의 리더십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혼’ 내지는 ‘흡수합병’이 해법이라고 제시한다. 업계 관계자들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다.

현실적으론 타협하기도, 갈라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영국 서울증권 애널리스트는 “회사를 쪼개거나 어느 쪽에 몰아주기도 어렵다”고 분석했다. 유 애널리스트는 “석유화학을 주력으로 하는 한화는 절대 (여천NCC를)내줄 리가 없다. 오히려 인수하고 싶을 것”이라며 “대림도 연간 1000억원대 배당금을 챙길 수 있는 캐시플로(현금 유동성)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화 측은 가능하다면 대림 지분을 사들여 유화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루겠다는 분위기다. 대림산업 역시 ‘앞으로 회사를 직접 챙기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에 비쳐볼 때 쉽게 물러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시장의 앞날을 점칠 수 없어서다. 유영국 애널리스트는 “유화업계 특성상 7~8년의 경기 사이클이 있는데 내년께 중동 국가가 NCC 사업에 진출하고 중국 경기가 기울면 여천NCC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팀장이 앞으로도 팀원들과 같이 저녁 자리를 갖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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