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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는 사랑하며 자라난다 - 귀를 기울이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호 14면

책을 좋아하는 여중생 시즈쿠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대출 카드에 적혀 있는 남자아이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가 읽은 책을 모두 먼저 빌려간 소년은 세이지. 우연히 세이지를 만난 시즈쿠는 자기가 쓴 글에 핀잔만 던지는 세이지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십대의 로맨스란 싸움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 법.시즈쿠는 어린 나이에 이미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세이지를 사랑하게 된다.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은 세이지가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하면서 두 아이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귀를 기울이면’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운영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감독 곤도 요시후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마녀 배달부 키키’ 등을 맡은 수석 작화 감독이었고 ‘귀를 기울이면’으로 연출의 재능도 인정받았지만, 이 작품을 만들고 3년이 지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그 때문에 ‘귀를 기울이면’은 더욱 애틋해진다. 어떤 계산도 끼어들 수가 없기에 다시는 되풀이하지 못할 십대의 첫사랑. 곤도 요시후미는 씩씩하고 천진한 그 사랑의 이야기를 유작으로 남긴 것이다.

그런 배경이 아니더라도 ‘귀를 기울이면’은 불법 비디오로 유명해진 90년대 중반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골동품 고양이 인형을 따라 하늘을 나는 소녀의 환상, 수십 년 전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가 매끄럽게 현재로 이어지는 구조, 올리비아 뉴튼 존이 맑은 목소리로 부르는 ‘Take me home, country road’ 가사와 겹치는 어린 연인의 사연이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사로잡는 덕이다. 설익은 십대의 사랑이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성장과 희망이 사랑의 유의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므로, 그들은 자라난다. 곤도 요시후미는 그런 눈부신 순간을 잔잔한 판타지로 실어냈다.

‘귀를 기울이면’은 국내에서도 개봉한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의 히이라기 아오이가 그린 만화가 원작이다. ‘고양이의 보은’에도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는 세이지의 할아버지가 간직한 사랑의 매개물, 고양이 인형 바론이 등장해 향수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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