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처리 시장도 '땡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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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새벽 '땡 상가'로 통하는 동대문 테크노 상가. 4년째 이곳에서 '전시회'란 매장을 운영하는 김남기(38)씨는 "불황으로 의류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여 결국 땡처리 시장에 넘어오는 물량도 줄어들고 있다"며 "동대문 일대에서 땡처리하는 곳도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마진 폭을 크게 줄여보기도 하지만 제 살만 깎아먹다 결국 빚지고 도망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상가 곳곳엔 빈 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불황에 강하다는 땡처리 시장마저 얼어붙은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의류브랜드 50여개가 사라졌다. 상인들은 "의류 유통의 '하류(下流)'인 땡처리 시장까지 얼어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불황뿐 아니라 외국산 저가 상품의 범람도 땡처리 시장이 얼어붙은 요인이다. 아웃렛 사이트 '인짱'을 운영하는 인종일 사장은 "대형 할인점들까지 저가상품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재래 의류시장이 고사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다섯대의 차를 전세내 올라오던 지방상인들도 요즘은 방문 횟수가 일주일에 두 번으로 줄었다"며 "직원들에게 월급 주기도 빠듯한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브랜드 제품의 재고.이월 상품을 파는 '브랜드 땡처리 시장' 도 마찬가지다. 설 연휴 직전 경북 구미에서 행사를 했다는 W기획의 權모 실장은 "땡처리 의뢰 건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며 "이 장사를 계속 해야 할지 접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브랜드 땡처리 시장이 열린 장충체육관에서 만난 상인 李모씨는 자신의 점포에서 안 팔린 남성복들을 땡처리라도 해서 팔아보려고 행사에 참가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입이 지난해의 3분의 1도 안 된다"며 "중국 가서 장사를 하든지 해야겠다"고 한탄했다.

4년 전부터 땡처리 시장에 몸담았다는 金모씨는 "1만원에 팔던 것들을 7천원에 내놓고, 7천원짜리를 5천원으로 깎았다"며 "수수료나 입점비 빼고 손해나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땡처리 기획사 崔모 사장은 "외환위기 때는 균일 특판 행사 업체가 재미를 봤지만 지금은 모두 불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 도소매 점포가 밀집한 동대문 의류상가도 활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겨울의류 도매업을 하는 李모(52)씨는 올 겨울 장사가 어땠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가을부터 매상이 확 줄었어요. 신용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학생들의 발길도 뚝 끊겼고요. 인근 패션몰도 장사가 안 되니까 물건을 많이 떼어가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박장우 대학생인턴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사진설명>
지난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의류 땡처리 기획전에서 주부들이 9천원짜리 정장을 고르고 있다. 업체들은 '이보다 더 쌀 수는 없다'는 등의 문구로 손님을 끌고 있지만 불황의 한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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