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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18."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길』(La Strada)은 꾀죄죄한 영화다.카를로 폰티와 디노 데 라우렌티스라는 당대 이탈리아의 손꼽히던 두 제작자가 함께 만들었는데도 어쨌든 꾀죄죄한 영화다.1956년에 만든 이영화의 주연배우는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줄리에타 마시나(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아내)였고 남자배우들은 54년 『율리시즈』로 라우렌티스와 인연을 맺었지만 고향 미국에선 인디언 추장 아니면 멕시코 깡패 정도의 조연이나 맡았던 앤터니 퀸과 같은 해 제작된 존 휴스턴의 『백경』 (Moby Dick)에서 이스마엘 역을 맡아 우리나라에 겨우 알려진 리처드 베이스하트였다.그리고 어쩌면 잠파노가 타고 다니는 삼륜차까지도 정말로 거지가 타고 다니던 것처럼 그렇게 꾀죄죄했던가.그럼에도 이 영화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과 베니스영화제 대상을 거머쥐었다.그만큼 뛰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너덜너덜한 폐차 직전의 차와 얼굴은 잘 모르지만 배역에 궁상맞도록 잘 어울리는 3명의 배우를 내세워 지지리도 가난한 한겨울 시골 길가에서 찍어댄 듯한 이 영화는 그러나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지붕』처럼 40년전의 현실 을 그대로 화면에 담은 흑백사진첩 같았기에,그리고 어쩌면 그럴까 싶을 만큼 한국의 현실과 너무도 같았기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거의 모든 사람의 몸에서 이가 끓던 그 시절,춥고 쓸쓸하고 초라했던 전후의 우리 현실에는 곡마단과 유랑극단의 비렁뱅이 곡예사.난쟁이 까불이.나팔소리.차력사가 항상 주변에 있었다.1만리라에 팔려 거리에 나서 「연예인」이 되기 위해 회초리를 맞는,지능지수가 모자라고 순진하다 못해 멍청한 젤소미나처럼 가수가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는 단봇짐 처녀들도 많았고,잔칫집 각설이에 시골 장터에서 북치고 장구치는 약장수도 있었고,하룻밤 풋사랑과 뜨내기 길바닥 인생도 얼마든 지 있었다.
『길』은 그 모든 사람들의 얘기였고,그래서 우리들의 얘기였다.비록 지금은 과거로 사라졌어도 어쨌든 꾀죄죄한 그 옛모습은 분명히 우리들의 것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우리들의 얘기가 마치 남의 얘기처럼 돼버리기는 했지만『오 젤소미나,애달프고나』라는 우리말 가사를 붙였던주제가의 구슬픈 가락과 더불어 이탈리아 영화 한 편이 억세게 고독하고 슬펐던 사람들의 얘기를 낡은 책의 한 페이지처럼 그냥담고 있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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