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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평양의 CIA요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생존시 가장 극찬했던 최고의 스파이 소설 작가가 존 르 카레다.영국 출신의 르 카레는 대학에서 독일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했고 졸업후 독일의 본 주재 영국대사관 2등서기관으로 근무한 외교관 출신의 추리작가다.
그의 대표작『추운 지방에서 온 스파이』는 동서독 분단으로 쌓인 베를린 장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처절한 스파이극 걸작품이다.고르바초프 집권으로 느슨해진 소련내에서의 스파이 활동을 그린작품이 그의 근작『러시아 하우스』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장막속에서 얼굴없는그림자로 행세하는 스파이들의 생활상을 냉전시대의 희생물이라는 측면에서 그들 삶의 애환을 긍정적으로 인간답게 그리고 있다.르카레 작품의 특이성과 매력이다.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무너진 몇해 뒤 르 카레는 미국(美國)국무부가 주관하는 어느 만찬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이제 끝났다는 요지의 연설을 해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다.냉전의 시대가지난만큼 스파이 역할도 끝났고 스파이를 주제로 소설을 써먹고 살았던 스파이 작가나 영화도 이젠 사양(斜陽)산업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착 뉴스위크를 보면 미국 CIA(중앙정보국)는 전보다 더 많은 요원을 거느리면서 보다 활기찬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그중엔 북한 정부안에「깊이 침투된 요원」(Deep-penetration Agent)을 확보하고 있고 이란.이라크 뿐만 아니라 크렘린에도 치밀한 스파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적은 보수를 받는 KGB요원을 매수하기 쉬웠다는 부연 설명도 붙어 있다.
우리의 관심은 역시 평양(平壤)의 CIA요원에 쏠린다.휴전협정후 포로교환을 하면서 이미 그때 요원을 북한에 심었다는 르 카레 같은 추리적 짐작도 가능하고 없는 요원을 있다고 해서 평양 정가를 들쑤시는 반간계(反間計)전법일 수도 있 다.평양의 스파이를 주제로한 스파이 소설이 탈(脫)냉전시대에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너무 답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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