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퇴직근로자 18년치 밀린연금 지급EU 떠들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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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브뤼셀=南禎鎬특파원]유럽연합(EU)내 퇴직 파트타임 근로자들에게 과거 18년치의 밀린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획기적인 판결이 내려져 유럽전역이 들끓고 있다.12개 회원국마다 차이가있으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영국(英國)의 경우 무려 1백억파운드,12조원이 넘는 연금을 기업들이 토해내야 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재판소는 지난 28일 『과거연금대상에서 제외됐던 파트타임 근로자에게도 다른 풀타임 직원과똑같은 혜택을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근로조건 등 모든 사회문제에 대해 EU 전체차원의 공동정책을 규정한 EU협약에 따라 이 결정은 원칙적으로 12개 全회원국에 적용된다.
이번 판결은 표면상 파트타임 근로자의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사실상 여성근로자에 대한 性차별을 뿌리뽑겠다는 목적에서 이뤄졌다.지금까지 유럽기업의 파트타임직은 대부분 여성들이 담당해 왔으며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연금혜택에서 제외돼 왔 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안나 브로에크라는 퇴직여성이 옛 직장이던 NCV연구소를 상대로 『파트타임직이라도 연금혜택을 줘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승소함으로써 이같은 유럽의 전통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것이다.
유럽재판소는 이와 관련,『대부분이 여성인 파트타임 근로자들에게 연금을 주지 않는 것은 간접적인 성차별이며 이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설명했다.남성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많은 혜택을주는 것은 남녀평등원칙에서 명백히 벗어난다는 것 이다.
게다가 유럽재판소는 『이러한 판결은 이미 76년에도 내려진 예가 있으며 이를 무시한 기업들은 당연히 18년치의 밀린 연금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혀 모든 유럽업체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기업들로서는 앞으로 부담해야 할 추가비용도 문제지만 18년간 밀린 천문학적인 연금을 몽땅 지급할 경우 과연 도산을 면할 회사가 몇이나 있겠느냐는 것이다.특히 국가재정에서 연금을 충당하는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회사가 이를 부담하는 영국의경우 사태가 심각하다.영국 경영자협 회의 조사에 따르면 산업 전반에 걸쳐 모두 1백억 파운드(약 12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노동인구의 30%가 파트타임 근로자인 네덜란드의 경우도모두 5억7천여만달러(4천5백억여원)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紙는 이와 관련,사설을 통해 고용주가 일반의 통념과 관행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한 이같은「청천벽력」을 겪어서는 안 되며 유럽재판소가 이런 식의 행위로 일관한다면 정당한 근거 없이 EU역내에서 벌이는 사업의위험도를 높이고 있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유럽 각국 기업들은 이번 결정이「불소급원칙」에서 벗어나므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 이 문제가 어떻게 진전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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