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위험수위 넘은 獨 학교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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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3일 독일 중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힐데스하임의 직업학교에서 엽기(?)적인 교내 폭력사건이 벌어졌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한 학급 학생 4명이 지난 4개월간 같은 반 급우를 상습적으로 집단폭행해 왔다.

그런데 그 수법이 사뭇 잔인하다. 가해학생들은 피해학생의 머리에 양동이를 뒤집어 씌운 뒤 마치 고문하듯 무차별 구타했다. 또 피해자의 옷을 벗겨 피가 흥건한 상처부위를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다.

이 과정에서 성적인 추행도 일삼았다. 가해학생들은 또 폭행과정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학생의 제보를 통해 밝혀진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폭행사실을 목격하거나 알고 있었는데도 묵인한 혐의를 밝혀내 학부모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행정당국은 이 사건이 "17~18세의 직업학교 학생들이 장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 상태에서 저지른 매우 드문 사례"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설득력을 잃었다. 9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등 언론들이 다른 지방에서도 유사한 교내 폭행사건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노버에서는 16세의 남학생들이 오랜 기간 급우를 상대로 구타를 일삼았으며 심지어 한 여학생을 여러 차례 성폭행했다. 남부 바이에른주에서도 14세 학생들이 비디오로 촬영을 하는 가운데 친구를 교내에서 두들겨 패 의식을 잃게 한 사건이 적발됐다.

니더작센 범죄연구소의 크리스티안 파이퍼 소장은 "날로 늘어가는 끔찍한 폭행장면으로 가득 찬 영화가 10대들의 폭행을 부추기고 있다"고 풀이했다. 인터넷과 비디오의 거센 공세에 엄격하고 규율이 잘 잡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학교 교육이 힘없이 허물어지고 있는 걸까.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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