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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시카고 시빅 오페라 하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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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시카고는 대화재라는 뼈아픈 참사를 겪었다. 그 결과 서부 개척 시대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현대식 건물이 하나 둘씩 들어서게 됐다. 시카고의 사업가 페르디난드 페크(1848∼1924)는 뭔가 기념비적인 빌딩을 짓고 싶어했다. 무엇보다 그는 오페라 같은 고급 예술을 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 1885년에 시카고 그랜드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얼마 후 그는 아예 오페라 극장을 짓기로 했다. ‘음악의 성지(聖地)’를 세우기 위해 루이스 설리반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이렇게 해서 사우스 미시간 애브뉴에 개관한 극장이‘오디토리엄 시어터’(Auditorium Theatre)다. 시카고 심포니는 1891년 10월 16일 창단 공연부터 1904년까지 이곳에서 연주했다.

1889년 12월 9일 뒤부아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승리 환상곡’으로 개관한 오디토리엄 시어터의 총건축비는 800만 달러. 이중 320만 달러가 오페라극장에 소요됐다. 객석수는 4200석. 17층짜리 건물에 객실 400개짜리 호텔과 사무실, 사무실ㆍ기상대ㆍ천문대까지 입주했지만 건물 임대료로는 극장 운영비는 턱없이 모자랐다. 1929년 웨스트 루프의 상업지구에 시빅 오페라 빌딩이 개관하면서 시카고 최고의 오페라극장이라는 지위마저 잃게 됐다. 1946년 루즈벨트대가 건물을 매입한 후 거의 방치됐다가 1967년 뮤지컬ㆍ발레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음향이나 시야 면에서는 오디토리엄 시어터가 훨씬 좋았으나 시빅 오페라 하우스가 대형 공연을 잇따라 유치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빅 오페라 하우스는 나란히 서있는 오피스 타워와 함께 ‘시빅 오페라 빌딩’이라고 부른다.

같은 건물에 오피스 타워

시카고 시빅 오페라 빌딩은 전기와 주택설비로 억만장자 새뮤얼 인설(1859∼1938)이 지었다. 그는 당시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아내와 딸이 모두 성악을 전공했다. 인설 자신이 열렬한 오페라 애호가이기도 했지만, 페르디난드 페크가 지은 오디토리엄 시어터에 필적할 만한 오페라 극장을 짓고 싶어했다. 일종의 ‘라이벌 의식’의 발로였다.

예산 문제로 건물의 외양은 서민적으로 꾸몄고 사무실 빌딩을 함께 지어 임대 수익금으로 오페라 극장을 운영하려고 했다. 그는 신축 오페라 극장이 갖춰야 할 조건을 5가지로 꼽았다. 안전성, 탁월한 시야, 안락한 의자, 우아한 분위기, 최적의 음향 등이다. 건축가도 직접 선정했다. GAPW사는 이미 시카고의 링글리 빌딩, 자연사박물관, 콘티넨털 일리노이 은행 사옥을 설계한 바 있다.

1925년 시카고 시빅 오페라 빌딩을 설계할 당시만 해도 시카고는 전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개관 6일전부터 대공황이 시작됐다. 인설은 3년 후 빈털털이가 됐다. 1958년 6월에는 건물 소유주들이 극장을 대형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으로 개조했으나 오페라 공연은 계속됐다. 1960년대에는 주변 지역이 쇠락해가면서 ‘시빅 오페라 빌딩’이라는 이름보다 ‘노스 웨이커 드라이브 20번지’또는 ‘켐퍼 보험사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오페라극장은 12층 규모로 45층짜리 오피스 타워, 22층짜리 사무동 2개가 양쪽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시카고 강을 마주보고 거대한 옥좌(玉座)처럼 버티고 있다. 코린트 양식의 아치형 문에 새겨진 ‘THE CIVIC OPERA HOUSE’라는 글씨가 없다면 오피스 빌딩이라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극장 출입구도 찾기 어렵게 돼 있다. 오페라극장은 남쪽, 시빅 시어터(연극 무대)는 북쪽에 출입문이 나 있다. 시빅 시어터는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초연 무대로 유명하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의 상주 무대

시카고 시빅 오페라 빌딩은 아르 누보, 아르 데코 양식의 건물이다. 코린트 양식의 교각 위에는 리라(고대 그리스의 현악기)로 장식돼 있다. 오페라단이 공연 중일 때는 베이지색과 청록색으로 된 리릭 오페라 배너가 아치에 걸려 있다. 구리로 만든 출입문은 횃불, 리라, 트럼펫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로비 바닥은 테네시 산 핑크색과 회색 대리석이다. 높이가 12.5m나 되는 로비 천장에는 오스트리아 산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걸려 있다.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파리 오페라의 영향을 받아 희극과 비극의 가면을 극장 곳곳에 조각으로 새겨 놓았다. 로비 벽기둥에는 극장을 지을 때 후원하고 기부한 사람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무대막 그림은 베르디의 오페라‘아이다’의 개선 행진곡 장면. 미국 작가 쥘 게린(Jules Guerin, 1866∼1946)의 작품이다.

시카고 리릭 오페라단은 1954년 창단 이래 줄곧 시빅 오페라 빌딩에서 공연해왔다. 1993년 시빅 오페라 빌딩의 극장과 백스테이지 공간을 아예 매입한 다음 3년에 걸쳐 오프 시즌을 이용해 대대적인 개ㆍ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무대와 똑같은 크기의 리허설룸을 확보했고, 개관 이후 처음으로 의자 커버와 카펫을 교체했다. 극장 내부의 페인트칠도 다시 했다. 무대막도 교체했다. 백스테이지에는 방음문을 설치했다. 시카고 시빅 오페라 빌딩은 1998년 2월 5일 시카고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공식 명칭: The Civic Opera House

◆건축가: Graham, Anderson, Probst & White

◆개관: 1929년 11월 4일(베르디‘아이다’)

◆객석수: Ardis Krainik Auditorium 3563석, Civic Theatre 900석

◆상주단체: 시카고 리릭 오페라

◆무대막: 쥘 게린 ‘아이다 개선 장면’

◆초연: 펜데레츠키‘실락원’(1978년)

◆주소: 20 North Wacker Drive, Chicago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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