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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섣부른 '발자국' 발표에 갈팡질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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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6일 제주도에서 사람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는 발표가 나온 서울 덕수궁 미술관 브리핑실.

내용의 중요성을 감안해 화석 발견자와 함께 문화재청 고위 간부들과 천연기념물분과 위원들까지 발표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한 발표자는 기자들에게 "세계적 뉴스"라며 "보도가 잘못 나가면 국가적인 망신을 당할지 모르니 신중을 기해달라"고 특별히 당부했다. 이뿐 아니었다. 문화재청 측은 화석이 발견된 이후 전문가들이 현지에 수차례 내려가 확인작업을 벌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담당 공무원이 진짜 사람 발자국인지 확인하기 위해 신발을 벗고 화석에 발을 맞춰 보았다는 일화까지 공개했다.

그런데 단 이틀 만에 연대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 발표에서 화석의 생성연대는 그 존재만큼이나 핵심적인 사안이다. 문화재청 측은 파문이 일자 "이런 중요한 사안이 발표되면 언제나 이견은 제기돼 왔다"거나 "그러니까 5만년 전으로 못 박은 게 아니라 추정된다고 한 것"이라며 한발 비켜나갔다.

그러나 당시 발표에서 '5만년 전 구석기인의 발자국'은 단순한 '추정'이상이었다. 이 때문에 보도자료와 현장에 나온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화석이 인류의 이동경로를 밝혀줄 단서라느니, 제주도 빌레못 구석기 유적과 연관이 있을 거라느니 하는 진전된 해석까지 내놓았던 것이다.

지금으로선 5만년 전이 맞는지 4천년 전이 맞는지 알 길이 없다. 화석산지를 대상으로 직접 측정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는 발표 과정이다.

문화재청이 근거로 내세운 보고서의 '5만년 추정'은 오차범위가 ±2만3천년에 달하지만 발표 당시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더구나 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는 "문화재청 조사팀이 사전에 상의해 온 일이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문화재청은 연합조사단을 구성, 생성연대를 정밀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진작 철저하게 알아본 뒤 발표할 수는 없었을까. 유적을 공식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발표를 서둘렀다면 연대추정과 해석은 뒤로 미뤘어야 했다. '한건주의'혐의가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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