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식인’ 추사의 진면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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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20면

추사 김정희(1786~1856)는 24세였던 1809년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찾았다. 그는 연경 도성에서 40일간 머무르며 중국 석학들과 교유했다. 문학·역사·철학·시.그림 등에서 모두 탁월했던 추사에게 중국 학자들은 깊이 매료됐다. 추사는 귀국 후에도 그들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중국이란 ‘선진국’의 학문을 한국화했다.

서예가 이전에 청대 고증학을 조선에서 꽃피운 경학(經學)의 대가이자 격조 높은 작품을 완성한 대시인으로 추앙받는 추사의 ‘글로벌 지식인’적 면모를 확인할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추사글씨 귀향전’에 이어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의 기증품 가운데 추사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한·중 학자들의 학술문화교류 관련 자료를 모은 전시다. ‘추사의 편지와 그림’ ‘추사의 금석 제발’ ‘중·일 관련 추사 글’ ‘중국학자가 추사와 그 주위 사람에게 보낸 편지와 서화’ ‘경학과 금석학 관련 서적’ 등 5가지 주제로 나눠 꾸렸다.

추사는 한 번 간 연경에서 새 학문조류를 맞이하고 재해석하면서, 청조문화의 핵심을 완전히 파악하여 새로운 실사구시의 학문을 조선에 가장 먼저 소리 높여 외쳤다. 이번 전시회에선 근세 문화사의 중요한 전기인 청나라 학문의 조선 전래, 조선 학자와 청나라 학자 간의 학문적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한·중 문화 외교를 정립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품은 원본 자료를 20~40년대에 후지쓰카가 직접 찍은 사진 자료가 대부분이다. 원본 소장처를 모르는 상황에서 사진만이라도 볼 수 있는 것은 추사 연구에 있어 행운이다.

추사 연구의 선구자였던 일본 역사학자 후지쓰카는 소장하고 있던 ‘세한도’(국보 180호)를 생전에 조건 없이 한국에 기증했고, 아들 후지쓰카 아키나오도 선친의 유지를 이어 지난해 초 추사 친필 20여 점과 유물 2750여 점을 과천시에 기증했다. 아키나오는 지난해 8월 “추사에 대한 연구는 한국에서 완성돼야 한다”며 그와 선친이 평생 모은 추사 유품 1만여 점을 과천문화원에 기증하고 며칠 뒤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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