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명품이 아닌 가치로 말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호 23면

1. 반얀트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휴식의 모습.

1906년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는 이탈리아의 토지 중 80%를 20%의 인구가 소유하고 있음을 알아내고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 중 20%에서 비롯됐다”는 법칙을 발표한다. 쉽게 말하면 국민의 20%가 전체 부(富)의 80%를 소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물건을 팔든 서비스를 팔든 상류층 20%만 잡으면 전체의 80%를 잡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바로 VIP(Very Important Person) 마케팅이다.

2. 8월 오픈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수영장.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 ‘파레토의 법칙’은 무너지고 있다. 귀족 마케팅, 명품 마케팅, 로열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의 지향점이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의 제일 위쪽 그룹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이 겨우 20%의 범주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불쾌해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가 좀 더 뾰족한 곳에 있기를 원했다. 대한민국 상류층 10%, 5%, 3%, 1%….

3, 4.전 세계적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9개의 브랜드를 입점하면서 새로운 VVIP 라이프 스타일존을 도입한 서울신라호텔 아케이드.

심리학자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다섯 가지 단계를 가지고 있다.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 욕구, 3단계 애정 욕구, 4단계 존경 욕구, 그리고 마지막 5단계가 자기실현 욕구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을 향유하는 것 이상, 그러니까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만족감과 자부심이 바로 부자들(VVIP 고객들)이 원하는 5단계의 욕구다.

5, 6.최고급 남성 정장 브랜드 ‘키톤’ 매장. 7.이탈리아 최정상의 침실 가구 브랜드 ‘플루’. 8. 이세이 미야케 최고급 라인 ‘하트’. 9.쉐라톤 워커힐의 ‘워커힐 이너써클 회원전용 라운지’. 10. 힐튼 호텔이 준비하는 ‘구어메 써클’.

‘매우 매우 소중한 사람(들)’의 최종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마케터들의 발놀림이 발전해온 것은 당연하다. 특별한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이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도록 VVIP 존(Zone)을 창조해야 했으니까.

금융권은 PB 고객들이 번호표를 들고 기다릴 필요도, 은행·증권사·세무서로 뛰어다닐 필요도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백화점은 VVIP 고객들이 입점한 명품 브랜드 안쪽, 숨겨진 공간에서 그들(8명에서 20명 안팎의)만을 위해 준비된 트렁크 쇼를 감상하며 편안하게 원스톱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시즌마다 새로운 기획을 모색한다.

항공사의 퍼스트 클래스 프로그램은 어떡하면 고객의 누운 자리가 더 편안할 수 있을까, 고객의 까다로운 혀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를 연구 중이다. 귀족 클리닉을 지향하는 병원들은 진시황의 불로초에 버금가는 노화방지 건강프로그램으로 자신들의 특별한 고객을 케어 한다. 시가 6억원 이상의 롤스로이스 팬텀은 “나의 경쟁자는 자동차가 아니다. 그것은 소형 제트기나 고급 빌라다”고 말한다.

특별한 네트워크가 관건
VVIP 존의 특징은 배타성에 있다. 누구나 초대받을 수 있는 자리라면 그것은 이미 부자들의 흥미를 끌 수 없다. 소수의 회원으로만 구성된 멤버십 클럽이 그 예다. 경제적·문화적으로 비슷한 능력과 취향을 가진 이들의 좀 더 프라이빗 한 공간. 이들 멤버십 클럽은 최상위 소셜 커뮤니티로서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리드하고,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최종적으로는 글로벌 사회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멤버십 클럽을 살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 동부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모여 만든 아이비리그는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이 모여 만든 ‘르네상스 클럽’은 미국 최고의 정치가·경제인·저널리스트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미국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 존재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년간 빠지지 않고 참가한 연초 파티 장소가 바로 이 클럽이다.

미국을 방문한 각국의 왕족들이 게스트로 참가하는 ‘캐피털 시티 클럽’, 런던의 금융계를 주도하는 ‘런던 캐피털 클럽’, 중국을 세계로 이끌고 있는 글로벌 커뮤니티 ‘장안 클럽’, 일본 최대의 다국적 사교클럽 ‘도쿄 아메리칸 클럽’, 홍콩 샹그릴라 리조트의 ‘마리나 클럽’ 등은 철저한 회원 관리로 운영되는 세계의 대표적인 멤버십 클럽이다.

도심에 출현한 특급 리조트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주로 그 공간으로서 호텔이 이용돼 왔고, 때문에 국내 최고급 호텔들은 각기 특별한 멤버십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프리미엄급 리조트 그룹들이 합세하면서 VVIP를 위한 멤버십 클럽의 스페셜 서비스는 한층 진일보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세계적인 명품 리조트 체인 ‘반얀트리(Banyan Tree)’의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다. 전 세계에 21개의 리조트와 호텔, 58개의 스파, 69개의 갤러리 및 2개의 골프 코스를 보유한 반얀트리는 2010년까지 29개국에 59개의 호텔과 리조트를 런칭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 중심 남산에 위치한 타워호텔을 리노베이션, 2009년부터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6만9000여㎡의 푸른 대지 위에 50여 개의 스위트룸으로 구성된 6성급 호텔과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 동을 구성하고 영혼의 안식처를 제공한다는 것이 반얀트리의 청사진이다. 지난 8월에 아웃도어 수영 풀과 세계적인 골프 매니지먼트사인 트룬골프(Troon Golf)의 스페셜 티칭 프로그램이 오픈한 상태. 12월에는 아이스링크와 함께 2009년 그랜드 오픈에 앞서 멤버십 회원들이 반얀트리만의 특별한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도록 청담동에 ‘멤버스 라운지’를 오픈, 운영할 계획이다. 청담동 멤버십 라운지는 국내외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갤러리 전시와 하우스 라이브 공연, 그리고 와인 클래스 등의 준비를 마쳤다.

세계의 유명 리조트를 서울 도심 한가운데로 옮겨 놓고, 휴식은 물론 비즈니스 커뮤니티까지 가능하도록 한 반얀트리의 멤버십 클럽의 컨셉트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새로운 VVIP 존의 등장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 3%의 라이프스타일 충족
VVIP 존의 또 다른 특징은 ‘최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부자들은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최고의 품격과 가치가 집약된 공간에서 그에 어울리는 서비스를 만끽하고 싶어 한다. 업그레이드된 호텔 VVIP 마케팅이 좋은 예다. 럭셔리한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는 공간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넘어, 호텔을 이용하는 부유층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 니즈(needs)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 기본 컨셉트다.

지난해 5월 3층부터 6층까지의 공간에 금융·스파·여행·비즈니스·클리닉·스튜디오 등의 시설을 갖추고 ‘라이프스타일 존’이라 명한 서울신라호텔은 이번에 지하 1층 아케이드 명품관을 리노베이션했다. 이른바 ‘명품(名品)이 아닌 가치(價値)를 판다’는 전략이다. 호텔을 방문한 고객이 일상과 비즈니스를 한 공간에서 해결하고, 희소가치가 있는 명품 브랜드 쇼핑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개념의 서비스다. 이미 최정상의 명품 브랜드가 입점돼 있는 가운데 9개의 브랜드가 새롭게 선보였는데 그 면모가 놀랍다.

최고의 럭셔리 남성 정장 ‘키톤’, 이세이 미야케의 최고급 라인 ‘하트’, 영국 왕실의 구두를 책임지는 ‘존 롭’, 이탈리아 최고의 침실가구를 만드는 ‘플루’는 신라호텔에서만 만날 수 있는 브랜드들이다.

최종 입점까지 최소 1년이 걸리는 신라호텔에 이들 브랜드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입점한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고객, 말하자면 상류층 3% 이내의 고객을 신라호텔에서 만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텔과 명품 브랜드가 서로의 고객 컨셉트를 정확히 공유하고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겠다는 마케팅 기법이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면서 호텔의 이미지를 함께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은 VVIP 마케팅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미 다양한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서울웨스틴조선호텔은 VIP용 의전 차량으로 세계적으로 희소가치가 있는 일본 미쓰오카 모터스의 클래식 세단 가류 II(1억7000만원)를 도입해 공항부터 호텔까지 풀 에스코트하는 ‘익스프레스 체크인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힐튼 호텔은 고객 가운데 최고의 미식가들을 위한 만찬 ‘구어메 써클(gourmet circle)’을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최고의 식사는 누구나 맛볼 수 있지만,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소수라는 기획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은 지난 8월 ‘워커힐 이너 써클(inner circle) 회원 전용 라운지’를 오픈했다. 국내 특급호텔 최초의 VIP 라운지로 프리미어 브랜드와의 제휴를 통해 와인, 뷰티, 재테크 클래스 등 하이엔드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무료 세션을 월 1회 진행하고 있다.

VVIP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더 소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월레스와 그로밋처럼 달 조각을 버터처럼 베어 토스트에 바르게 될 날이 올지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