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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아이들‘당찬 도전’ 영어 학예회도 거뜬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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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양구 죽리초등학교는 8일 오후 문화복지센터에서 영어학예회를 했다. 5학년 학생들이 연극 ‘셋째 돼지 이야기’를 연기하고 있다. [양구군 제공]

“Hello, everyone! We are narrators. We will show you a play.” 8일 오후 강원도 양구군 문화복지센터 공연장. 내레이터인 나무가 무대에 등장해 영어로 이같이 말하자 장내는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은 듯 조용했다. 이어 나무가 “A long time ago, in a small town there were three little pigs and a mother pig.”이라 말하며 연극은 본격 시작됐다. 자리를 꽉 메운 관객들은 귀로는 영어대사를 듣고, 눈으로는 한글 자막과 배우들의 연기를 보느라 분주했다. 영어로 연극 ‘셋째 돼지 이야기’를 연기한 배우들은 양구 죽리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다.

유치원생을 포함해 전교생이 84명뿐인 농촌의 작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영어학예회를 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죽리 영어학예회’로 이름 붙인 학예회는 리코더 연주에 이어 사회를 맡은 학생이 “Good afternoon, everyone!”이라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 “Good-bye, everyone!”이란 작별 인사까지 우리 말은 하나도 없이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대 오른쪽 한 켠에 빔 프로젝트를 이용한 한글 자막을 설치했다.

1시간 10분 동안 진행된 학예회는 연극을 비롯해 3학년 학생들이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3학년 이주희 양은 ‘서울 쥐와 시골 쥐’ 동화구연, 4학년은 ‘지구촌 한 가족’이란 패션쇼, 6학년은 ‘내사랑 토끼’ 인형극, 2학년은 율동과 챈트, 1학년은 현대무용 ‘카사블랑카’를 선보였다. 또 유치원 어린이들도 율동을 곁들여 ‘천사들의 노래’를 불렀고, 이 학교 김동근 교장은 찬조로 섹소폰을, 교직원은 ‘애니 로리’와 ‘오 나의 태양’을 합창했다. 교직원 합창에는 수영 코치와 기사 3명도 포함되는 등 이날 학예회는 죽리초등학교 구성원 모두가 참가했다. 김 교장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 공부에 취미를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올 봄부터 영어학예회를 기획하고 준비했다”며 “교직원과 학생 모두의 노력으로 꾸민 학예회로 아이들이 영어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학예회를 지켜본 학부모 윤현주(36·양구읍 상리)씨는 “연극에서 두꺼비로 분한 딸 현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하는 것을 보니 뿌듯하고 흐뭇하다”며 “농촌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이렇게 발표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갖게 돼 기분 좋다”고 말했다.

◆영어공부 어떻게 했나= 이 학교 학생들이 영어를 본격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학생들이 어른이 돼 살아갈 10~20년 후 미래사회는 영어가 개인 및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이라 생각한 김 교장은 영어체험학습을 학교 특색교육으로 정했다.

교실 반 칸을 활용해 영어로만 말하는 ‘English Zone’을 설치, 공항·상점·병원·우체국·은행 등의 코너 별로 생활영어 인터뷰를 통과하도록 해 의사소통 능력을 키웠다.

올해 3월부터 원어민 교사가 영어 교과는 물론 방과 후 영어 회화반을 지도하고 있으며, 강원발전연구원 지원으로 2006년 여름 방학부터 올해까지 세 번 4주 일정의 원어민 영어캠프를 운영했다. 농협이 주관하는 영어 캠프에 5명의 학생을 보내는 등 여건이 닿는 대로 다른 영어캠프에도 참가하고 있다.

또 영어문화권 체험을 적극 주선, 지난 2월과 8월 5명의 학생이 필리핀으로 15일간씩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이밖에 매주 월요일마다 영어퀴즈를 실시하고, 영어말하기 대회를 여는 등 다양하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학예회에서 사회와 연극의 둘째 돼지 역을 맡은 염수빈(5년)양은 “이제는 외국인을 만나도 두렵지 않을 만큼 재미있게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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