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버는 것보다 안 까먹는 게 중요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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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제가 소심합니다. 손해 보는 짓은 못 합니다.”

국내시장에서 가치투자 전도사로 불리는 이채원(44·사진)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의 말이다. 최근 한 펀드 포털사이트가 실시한 ‘가장 만나고 싶은 펀드매니저’로 꼽힌 그다. 주식 도사인 듯싶은데, “NHN·메가스터디·하나투어 같은 게 그렇게 성장할 줄 몰랐다”고 고백한다. 대신 “죽어도 손해 보기 싫은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며 가치투자 전략을 설파한다. 7일 저녁 이 전무가 한국투자증권의 고액 자산가 2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 내용을 지상중계한다.

① 아파트도 가치 따져 사라

아파트 얘기 좀 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은 땅이다. 천재지변이 나도 그대로다. 아파트를 사면 바로 ‘대지지분’이 영원한 가치다. 당장 등본 떼서 확인해봐라. 보통 평수의 3분의 1 정도가 대지지분이면 양호한 수준이다. 30평(99.2㎡)짜리 대지지분이 10평(33㎡)인 아파트가 6억원에 거래된다고 치자. 강남의 아파트 용지 가격을 평당 3000만원으로 잡으면 이 아파트의 내재 가치는 3억원이다. 나머지 3억원은 강남의 주거·교육 환경이 갖고 있는 프리미엄인 셈이다. 최근 서울 한 지역의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게 되면서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16평(52.9㎡)과 23평(76㎡)이 각각 2억원, 3억원쯤에 거래됐는데 재평가금액이 16평 5억3000만원, 23평 5억3100만원이 됐다. 알고 보니 16평과 23평의 대지지분이 같았던 거다.

②기업을 사는 마음으로 주식 사라

워런 버핏이 하는 말이다. 주식을 사지 말고 기업을 사라고. 예를 들어보자. 삼성엔지니어링의 자기자본이 4350억원이다. 그런데 시가총액이 5조원(7일 종가 기준 4조8800억원) 가까이 된다. 지금 내 손에 5조원이 있다 치자. 과연 그 돈으로 삼성엔지니어링을 살 수 있는지. 물론 삼성엔지니어링은 좋은 회사다. 그러나 매년 26%씩 자기자본이 늘어난다고 가정해야 10년 후 5조원이 된다. 이건 거의 기적이다. 역사상 이런 기업이 없었다. 다행히 그렇게 성장한다 쳐도 5조원 들여 샀는데 10년 후에야 겨우 본전 찾는 거다. 그런데 5조원을 은행에만 넣어도 1년에 2500억원이 생긴다. 그렇게 생각하면 덮어놓고 사기 힘들 거다.

③적게 먹고 적게 깨지는 게 낫다

사실 가치투자가 사람이 할 짓은 못 된다. 주식이 제값을 받을 때까지 일주일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1999년 증시는 초활황세를 기록하는데 내 가치 펀드는 마이너스 수익률이 났다. 전화가 빗발쳤다. 하루는 투자자가 “거기 몇 층이냐 당장 뛰어내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결국 공모 펀드는 그만두고 2000년 4월부터 6년간 회사 돈을 굴렸다. 연간 성적을 보면 코스피 지수도 못 따라간 적이 많았다. 그런데 6년간 435%의 수익률을 올렸다. 코스피 지수가 56% 올랐는데도. 6년간 -50%, +60%, -50%, +60%, -50%, +60%의 수익을 냈다고 치자. 10%의 수익을 거둔 것 같다. 그러나 돈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1000만원→500만원→800만원→400만원→640만원→320만원→512만원이다. 많이 버는 것보다 안 까먹는 게 중요하다.

인천=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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