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연극 "병사와 수녀" 전성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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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막이 오르면 무대에는 여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이 한줄기 내려온다.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배우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인다.
화려한 의상이나 쏟아지는 꽃다발.연극무대에 첫 발을 디딘 새내기라면 누구나 가져 봄직한 환상에 전성희(22)는 별로 연연하지 않는 눈치다.
극단 배꼽이 SKC플라자에서 공연중인『병사와 수녀』로 데뷔무대를 갖는 그가 찰스 쇼 원작을 개그맨 김형곤이 개작한 이 작품에서 맡은 배역은 정조굳은 수녀 미셸역.
먹어도 살찌지 않는 아이스크림,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커진 침대등 광고가 한 차례 나간 다음 소극장 무대에 불이 켜진다.객석에는 성(性)을 희화한 농담 가득한 대사를 들으며 웃을 준비를 갖춘 관객들이 눈에 들어온다.둘만 남은 무인도 에서 국군병사는 여자를 원하지만 수녀는 천주님이 보고 계시다며 남자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갈등은 시작된다.
작품성보다는 뼈대만 남기고 원작을 희극으로 만드는 TV 코미디에 익숙한 관객들은 그와 흡사한 이 연극을 보며 웃음 그칠 새가 없다.어서 수녀를 덮치라는 악마(?)의 꼬드김에 병사가 기울어지고 관객마저도 한편이 되어버린다.
『기도하세요.』『주여,저분은 원래 착한 사람입니다.』 시종일관 진지한 수녀의 모습을 유지하는 전성희의 단호한 목소리는 웃음 속에 묻혀버릴 뻔한 극적 긴장을 되살린다.
공연 직전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걱정하던 코맹맹이 기색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제 목소리 듣기 거슬리지요? 감기에 걸려가지고… 미안해 죽겠어요.』 미안하다는 건 물론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다.직업배우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지금,저녁은 굶을 망정 감기약은 입안에털어 넣게 됐다는 그는 요즘 관객에 대한 프로배우의 책임감을 톡톡히 배우고 있다.
***겁없는 프로 배우 수업 서울예전 연극과를 나와 선후배 사이에 군기가 센 연극판의 독특한 분위기가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지만 연습 때「아직 겁이 없어서」이럴 땐 이런 연기가 어떠냐고 의견을 내놨다가 눈치없는 후배로 핀잔도 들어야 했다.
『목표요.10년쯤 딴 생각없이 연극에 푹 절어 사는게 목표라면 목표예요.』 그 때쯤 되면 연기가 뭔지 조금은 알수 있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대답하면서 그의 선머슴같던 말투며 몸짓이무대위의 수녀처럼 다시 진지해진다.
글:李后男기자 사진:張忠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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