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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출마설, 냉랭한 박근혜… 시험대 오른 이명박의 CEO형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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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70여일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일성(一聲)은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대선을 45일 남겨둔 현재 이 후보는 ‘덧셈의 정치’에 성공하고 있는 것일까. 최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 움직임, 박근혜 전 대표 측의 소극적 협조 분위기 등을 보면 이 후보의 다짐은 성공적이지 못하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한 가지 원인을 이 후보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이들은 “지금이야말로 이 후보가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1일 이방호 사무총장은 이 후보에게 이 전 총재의 행보와 관련해 “적극 대응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이 전 총재는 대선 후보로 나서려면 2002년 대선자금 잔금의 용처와 처리 의혹을 풀어야 한다”며 이 전 총재를 향해 직격탄을 쏘았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후보와 이 전 총재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분석했다. 이 총장의 이 발언은 어디까지 조율된 것일까. 이 총장은 이날 아침 선대위의 브레인인 전략홍보조정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이 후보의 핵심 측근은 “이 총장의 보고를 들은 이 후보가 그냥 ‘알았다’고 했는데 이 총장이 이 후보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일을 저질렀다”며 “이 후보가 2일 경남 방문 일정에서 이 총장의 지역구인 사천을 빼려고 할 정도로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이 전 총재를 제지할 수 있는 카드는 그것밖에 없다. 이 총장이 아주 잘못한 것은 아니다”는 기류가 흐른다.


대신 이 후보 측은 박 전 대표를 끌어안는 쪽으로 빠르게 선회하고 있다. 사실 이 후보는 경선 뒤 박 전 대표 포용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화합의 상징적 인사(人事)로 여겨졌던 사무총장 자리엔 자신을 도운 이방호 의원을 앉혔다. 피아(彼我)를 떠나 드림팀 구성에 나서야 할 대선준비팀에 박 전 대표 측 인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박 전 대표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재오 최고위원과 정두언 의원은 선대위의 중심을 지켰다. 박 전 대표 측 인사들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선대위 핵심 포스트 명단에서 박 전 대표 측 인사를 찾긴 어려웠다.

이 후보 쪽 핵심에선 경선 직후 “박 전 대표 쪽 인사들을 너무 깊이 간여시키면 대선 이후 지분을 요구하고 나올 수 있고, 내년 총선 공천 때도 골치 아파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선 이후 권력의 파이를 나눠주지 않기 위한 포석이었다.

10월, 공석이 된 두 자리의 최고위원을 선출해야 할 순간이 돌아왔다. 박 전 대표 쪽에선 김학원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 자리를 자기 쪽인 전재희 의원으로 결정한 이 후보 측은 두 사람을 놓고 저울질했다. 보고 있던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의원을 주저앉혔다.

20일 뒤 이 후보는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를 박 전 대표 측에 내놨다. 박 전 대표 쪽과의 화합을 겨냥한 인사였다. 그 자리엔 박 전 대표 추천으로 김무성 의원이 지명됐다. 그러나 이 후보의 이 ‘선물’은 박수받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원래 그렇게 하기로 돼 있었는데 너무 많이 늦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박 전 대표를 포용하지 못한 것을 이 후보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이 후보도 통 큰 정치를 보여주지 못해 ‘포용력 부재(不在)’를 드러냈다. 한나라당 안에선 이를 이 후보의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과 관련 있다고 본다.

한 관계자는 “기업 세계에선 지분을 51%만 가지면 49%는 싹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반대편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 후보는 그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됐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후보 쪽의 한 의원은 “지지율이 독(毒)이었다”고 말했다. 사상 유례없이 높은 지지율은 선거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박 전 대표 포용의 필요성을 약하게 만들었다.

이런 자신감은 이 전 총재와의 관계에서도 재현됐다. 이 후보는 이 전 총재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후보 리더십은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인 반대편 수용에 유독 약한 면모를 드러냈다. 이는 결국 대선의 첫째 요소인 ‘구도’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

한편 성과주의와 무한경쟁으로 압축되는 이 후보의 CEO형 리더십은 한나라당과 선대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 후보는 선거인단에서 지고 여론조사의 승리에 힘입어 박 전 대표를 눌렀다. 조직보다 이 후보 개인의 승리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정두언 의원은 경선 직후 “후보는 이기고 우리(캠프)는 졌다”며 며칠 동안 이 후보에게 연락조차 못했다.

이후 출범한 이 후보 선대위는 당과 후보를 분리한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최고위 자문모임인 ‘6인회의’는 당의 기구가 아니다.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최고위원회의는 선대위와 직접 연결고리가 없다. 2002년 대선 당시 최고위원회의가 고위선거전략회의로 전환된 것과 사뭇 다르다. 당 정책위원회는 후보 정책공약 개발에서 밀려났다.

무엇보다 당 대표의 역할 공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강재섭 대표는 8인 공동선대위원장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한나라당의 역량은 이 후보를 위해 총동원되지 않고 있다.

정보와 권한이 이 후보에게 집중되지만, 책임과 부담도 고스란히 이 후보에게 넘어왔다. 단적인 예가 이 전 총재나 박 전 대표와의 관계개선 역할을 이 후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더라면 이 전 총재나 박 전 대표와의 가교 역할에 적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과 일정한 거리 두기는 구태 이미지를 지닌 여의도 정치에서 탈피하려는 것일 수 있다. 또 성과주의의 관점에서 본 기존 정치조직에 대한 불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나라당 내부의 불만이 자라고 있다. 한 의원은 “홀대받고 있다고 느끼는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불만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후보와 이들 사이에 생긴 이 같은 균열을 이회창 전 총재가 간파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한경쟁’에 내몰린 선대위 조직도 잡음을 낳고 있다. 김경준 BBK 전 대표가 귀국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의 참모들이 김씨의 송환 연기신청을 낸 것은 ‘전공(戰功)세우기 경쟁’의 망신 사례로 꼽힌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의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공세에 박형준 대변인과 나경원 대변인의 해명이 다르게 나가기도 했다. 칸막이 없는 경쟁시스템의 부작용 사례다.

선대위 안에선 “이 후보가 현대건설 CEO식으로 경쟁을 시킨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선대위의 한 관계자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50%가 넘는 지지율이 오랫동안 유지되면서 후보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횡액을 당할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후보 주변엔 예스맨들이 넘쳐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대선은 ‘덧셈의 정치’에 능한 쪽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DJP(김대중+김종필)연대’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승리도 그런 경우다.

이 후보가 어떻게 박 전 대표를 끌어안고, 보수세력의 역량을 결집해낼 것인가? 이래저래 이 후보의 CEO형 리더십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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