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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여 차마 눈 뜨지 못한 300억 송이 국화꽃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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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일 오후 미당문학제에 참석한 문인들이 미당 서정주의 외가 담벼락에 적힌 시 ‘해일’을 읽고 있다. ‘해일’에는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리는 미당의 외할머니 모습이 담겨 있다. [고창=변선구 기자]

국화는 채 피지 않았다. 해마다 흐드러졌던 300억 국화 송이, 올핸 꽃잎을 터뜨리지 않았다. 추석 직전까지 반 팔 윗옷을 걸쳐야 했던 날씨 탓이라며, 사람들은 유독 푸르렀던 3일의 가을 하늘을 원망했다.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동구 미당시문학관. 올해도 미당문학제는 열렸다. 미당문학제는 한국 현대문학의 태두인 미당 서정주(1915∼2000) 선생을 기리기 위해 미당시문학관과 동국대가 주최하고, 중앙일보·한국문화예술위원회·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행사다. 올해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이번 행사엔 미당 동생 서정태(84)옹, 동국대 홍신선 전 문화예술원장, 중앙일보 이하경 문화스포츠 에디터, 미당시문학관 정원환 이사장을 비롯해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자 문인수 시인과 역대 수상자 김혜순·문태준 시인, 한국시인협회 오세영 회장, 미당문학상 심사위원 황현산·김춘식·김수이씨 등을 비롯해 문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문예중앙·문학수첩·천년의시작·시애·시와사람들·애지·문학마당 등 여러 문예지도 축제에 동참했다.

 올해 미당문학제는 지난해보다 규모도 커졌고 내용도 튼실해졌다. 동국대가 주관한 시인학교가 사흘간 열렸고, 3일엔 본 행사 격인 미당문학상 현지 시상식, 미당 시 낭독회, 학술대회, 대학원생 교류 세미나, 미당 백일장, 도서전시회, 질마재 투어, 미당문학 특강, 축하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특히 약 100만㎡(30만 평)에 달하는 초대형 국화밭이 미당시문학관에서 30여 분 떨어진 석정온천 일대에 조성됐고, 그 국화밭 복판에 미당의 ‘국화 옆에서’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졌다. 정원환 이사장은 “미당문학제에 직접 참석한 문인은 300여 명이지만 미당문학제 기간에 국화를 보러 고창에 들른 방문객은 10만 명을 헤아린다”며 “미당문학제는 이제 소박한 문학행사를 넘어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리려는 국화 앞에서, 사람들은 살아서도 ‘귀신(詩仙)’ 소릴 듣던 돌아간 시인을 떠올렸다. 미당문학제 기간에 맞춰 해마다 귀신같이 만개하던 국화 300억 송이, 겨우 마음 속에 그려 넣었다.

고창=손민호·이에스더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20세기 한국시단의 최고봉이다. 1936년 시 ‘벽’으로 등단했다. 한국의 토속적 정서, 불교적 세계관,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 등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 ‘화사’ ‘자화상’ ‘귀촉도’ ‘국화 옆에서’ ‘동천’ ‘푸르른 날’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2001년 미당문학상을 황순원문학상과 함께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미당의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열리는 미당문학제도 2001년부터 계속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주요 문인(무순)=오세영·서정춘·문인수·황현산·김혜순·문태준·김춘식·김수이·박수연·홍용희·허윤회·박현수·유성호·이재복·이형권·홍신선·이재무·고영·김이듬·박판식·이원·채상우·김선굉·박진형·장옥관·엄원태·이종암·이규리·류인서·강현덕·오은숙·박주택·배한봉·김희업·최춘희·조영순·장석남·안시아·차주일·유종인·이동재·정수자·이승은·오정문·정선주·최창균·신현정·김백겸·김선태·김승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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