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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14년간의 침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우리들은 내내 崔圭夏 前대통령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아니 잊었다기보다는 관심이 없었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는지 모른다.참으로 기이한 망각이요 무관심이었다.비록 그의 대통령취임이 우연하고,재임기간도 10개월이 채 안되게 짧았다해도 엄연히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철저히 망각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퇴임후 의도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데도 있겠으나 그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을 것이다.그는 국민의 망각과 무관심을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기는듯한 느낌을 주어왔다.그렇지 않고서는 퇴임후 이제까지 14년간이나 계속된 그 길고 긴 침묵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비록 짧은 재임기간이었으나 그동안에 그가 겪었던 일들은 얼마나 극적인 것이었으며 또 역사적인것이었던가.
그러면서도 그것들에 관해 14년동안이나 단 한마디 입도 벙긋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超人的인 인내력이라고 해야할지,아니면 바위같은 무신경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不可思議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런 그가 12.12고소 고발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참고인 자격으로 질문서에 답변해줄 것을 요청하자 딱잡아 거절해버렸다.「대통령 在任중에 일어난 일에 관해 검찰에 진술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그렇다면 자신이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해야할 책무에 대해서는 얼마나 충실했던가.
10.26에서 이듬해 8월16일의 下野하기까지 사태 전모에 관해선 아직도 공백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현재 검찰의조사대상이 되고 있는 12.12사태의 진상 말고도 당시 왜 그렇게 정치일정을 길게 잡았는지,5.17및 5.1 8의 端初가 된 5.16계엄확대 동의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졌는지,光州사태의 진상에 관해 그가 아는 것은 무엇인지,5.26 國保委설치와5.27 광주진압작전의 재가 내막,그리고 자신이 下野하게된 이유등등 그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야만 할 未解決의 章은 이루 다열거하기도 어렵다.
이 역사적 사건들,국민적 관심사가 단지 대통령재임중의 일이었다고해서 침묵의 늪속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5共때는 여건이 어려웠다고 이해한다고 치자.더 길게 잡아 6共때도 어려웠다고 양해하자.그러나 이제는 시대도 바뀌고 세월도 흐를만 큼 흘렀지 않은가. 지난 일이지만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권능.책무를 제대로수행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한탄한 사람들이 적지않았다.뒷날 그의 측근조차도 80년4월 그에게『스페인의 카를로스국왕처럼 대통령이 나서 주위를 견제하면 언론과 지식 층도 밀어줄테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진언한바 있음을 증언하며 당시를 안타까워했다.
前대통령으로서 예우.법통을 지키려면 公人으로서의 책무도 다해야 한다.평범한 개인도 역사적.사회적 존재로 태어나거늘 하물며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책무가 없을 수 없다.그의주위사람들은 자신의 증언으로 인한 새로운 風波 를 염려한다고도말하지만 그것은 保身主義란 비판을 免키 어렵다.진상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음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폐해는 염려하는 風波의 폐해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퇴임후 회고록을 쓰는 것은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의 空白 메워야 이번 검찰의 12.12사태 수사에 관한한 12월13일까지의 공소시효에도 쫓기고 있다.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릴 경우 불복,상소할 수는 있으나 항고및 재항고에 통상 3~4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증언하지 않으면 그 법적 효력은 상실된다.14년이상 더 어떻게 기다리겠는가.이제는 지루한 침묵을 깰 때가 되지 않았는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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