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맡은 지 4년 속 많이 상했는데 이번에 다 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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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평양을 방문한 현정은 회장(왼쪽에서 셋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과 백화원 영빈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오른쪽이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U&I 전무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백두산 천지엔 눈이 내렸다고 한다. 이날 백두산을 둘러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당시 눈이 많이 와서) 천지에 오르지 못해 아쉬웠다”고 말했지만 그동안의 앙금을 털어내는 남북 경협사업의 ‘서설(瑞雪)’로 여겼을 듯하다. 지난달 30일부터 4박5일간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 장녀인 정지이 현대U&I 전무 등과 평양에 다녀오면서 백두산 관광 같은 굵직한 성과물을 따냈기 때문이다.

3일 오후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 적선동 현대상선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한 현 회장은 “이번 방북 결과가 아주 좋았다. (남북 경협에 대한) 북측의 적극적인 의지를 확인했다”며 만족스러운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번 방북에서 백두산과 개성 관광을 성사시킴으로써 시아버지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못다 이룬 대북사업을 이뤄낸 뚝심의 경영인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시아버지와 남편 두 사람의 ‘남긴 꿈’을 이룬 소감을 먼저 물었다.

“그런 소회를 말하는 게 나에겐 제일 힘들다. (현대그룹 회장으로) 일한 지 4년이 됐다. 대북 사업에 열정적이셨던 시아버지, 정몽헌 회장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많았다. 실제로 힘든 상황이 많았다.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속상한 일이 많았다. 이번 방북을 통해 이런 문제가 해결돼서 정말 기쁘다.”

이에 앞서 현대아산은 2005년 7월 북측과 연내에 백두산 관광을 2회 이상 실시하기로 합의했었다. 하지만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과 갈등을 겪으면서 북측하고까지 마찰이 생겨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도 “현 회장과 김 부회장이 함께 협력해 잘 해보라”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두 사람은 결별하기도 했다. 사실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은 1998년 11월 금강산 관광으로 시작됐다. ‘분단 50년’의 장벽을 허무는 대사건이라는 평가 속에 금강산 관광은 막을 올렸지만 현대아산은 일시금을 합해 5년간 9억4200만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관광 대가 때문에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부터 사업성보다 고 정 명예회장의 개인적인 의지와 정치논리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2003년 정부의 관광경비 보조금이 끊기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해 8월 정몽헌 회장이 대북 송금 사건 등으로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관광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하지만 그해 9월부터 금강산 육로관광이 시작돼 한숨을 돌렸고 내금강 관광에 골프장까지 들어서면서 올해는 관광객이 연간 3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현 회장은 특히 이번 방북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배려에 강한 인상을 받은 듯했다.

-이번 방북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배려가 각별했다고 하던데?

“백두산 참관을 위해 특별수송기를 내줬다. 북측 관계자가 ‘30~40분 안에 (백두산에) 도착할 거요’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더라. 또 북측은 방문단 25명 전원에게 백화원 영빈관을 숙소로 제공했다. 몽헌 회장이 방북했을 때도 일부 일행은 고려호텔에 묵었다. 북측이 각별하게 신경 써주는 것을 느꼈다.”

-김정일 위원장과 무슨 얘기를 했나.

“2년 만에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김 위원장이 ‘2년 전 안 된 거 얘기해라. 요구사항이 뭐냐’고 수시로 묻더라. 그래서 관광이 추가로 더 진행됐으면 한다고 했다. 딸(정지이·영이씨)의 안부도 물었다. 이렇게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나눴다. 정주영 회장, 몽헌 회장 얘기를 여러 번 했다. (남편인) 몽헌 회장을 ‘몽헌 선생’이라고 하더라. 그리고 두 사람이 금강산 비로봉에서 불고기 먹은 얘기를 들려줬다.”

현 회장은 이날(3일) 나온 노동신문 1면을 활짝 펴 보이면서 “오늘 새벽 2시에 합의한 ‘북·남 사이의 관광사업에 대한 합의서’ 전문이 신문에 실렸다”며 “북측의 관심이 이렇게 각별했다”고 만족스러운 소회를 밝혔다.

-최근 대북 사업에서 현대의 독점적 지위에 잡음과 불화가 있었다. 이런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건가.

“그렇게 봐달라.”(※이 대목에서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그 문제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앞으론 ‘다른 얘기’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며 현대의 독점적 대북 사업을 강조했다.)

-백두산 관광·개성 관광 사업기간은 얼마나 되나?

“오늘(3일) 아침에 합의했다. 모두 똑같이 50년간이다. 요금이나 여행일정 등은 추후에 합의할 것이다.”

-백두산을 직접 다녀온 소감을 말해달라.

“이번에는 눈이 덮여서 백두산 천지에는 가지 못했다. 삼지연과 베개봉호텔, 소백수 초대소에 들렀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산장이 아름답더라. 가늘고 길쭉한 잎갈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금강산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현 회장은 “스키장도 있었다”며 “김정일 위원장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백두산에서 스키를 탔다’고 하더라”며 스키장에 관심을 보였다. 윤만준 현대아산 사장은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해 겨울철 백두산 관광을 추진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금강산 비로봉 관광도 성사됐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제안해 비로봉 관광이 추가됐다. 김 위원장은 ‘남측에서 금강산으로 손님이 많이 오고 있다. 비로봉은 금강산의 최고봉’이라며 ‘이를 남측 사람이 볼 수 있게 하자’고 권했다.”

이상재 기자
409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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