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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독주에 김남구·장인환 도전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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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06면

한국 펀드시장의 역사는 37년을 헤아린다. 1970년 한국투자공사(하나대투증권의 전신)가 출시한 ‘안정성장 1월호’가 국내 펀드의 효시다. 하지만 펀드시장이 틀을 갖춰나가고 시장의 리더들이 출현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그 이전의 국내 펀드시장은 한국·대한·국민투신 등 이른바 3투신이 정부의 지원 아래 독과점 체제를 형성했다. 정부는 3투신을 주가 부양 수단으로 동원했고, 주가가 떨어질라치면 온갖 특혜금융으로 손실을 메워줬다.

국내 펀드 시장을 이끄는 사람들

외환위기가 펀드 시대 싹틔워
하지만 외환위기는 펀드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더 이상 정부가 해줄 게 없다는 사실을 시장 참여자들이 깨달았다. 이때부터 펀드시장의 진정한 실력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투자자들을 다시 규합하기 시작한 사람이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이다. 그는 투명한 펀드만이 투자자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일정 기간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 뮤추얼펀드가 1998년 허용되자 박 회장은 이 상품에 주목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이 펀드의 투명성에 착안, 98년 12월 국내 첫 뮤추얼펀드 ‘박현주 펀드’를 내놓았다. 박현주 펀드는 히트를 쳤고, 미래에셋의 신화가 시작됐다.

이 무렵 현대증권의 회장이던 이익치씨는 외환위기로 고조되던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으로 ‘바이코리아 펀드’를 대대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며 “우리 돈으로 우리 기업을 지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향은 뜨거웠다.

이 펀드는 4개월 만에 10조원의 자금을 모았다. 바이코리아 펀드 덕에 코스피 지수가 급등했고, 자금난에 시달리던 상장회사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후유증도 컸다. 이 전 회장은 돈을 끌어들이기에만 급급했지, 일관된 운용철학으로 펀드를 이끌지 못했다. 펀드의 투명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해외펀드 붐 조성
2000년 주가가 폭락했고 펀드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한동안 ‘주식형 펀드=손실’이란 등식이 성립할 정도였다. 박현주 회장은 그 돌파구로 해외펀드를 주목했다. 2003년 12월 박 회장은 홍콩 현지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하며 해외펀드를 들고 나왔다.
박 회장의 국내외 시장 개척에는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 대표의 공로가 컸다. 구 대표는 인디펜던스펀드와 디스커버리펀드를 한국의 간판 펀드로 키우며 5년 넘게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익을 올렸다. 이런 ‘트렉 레코드(장기 운용성적)’를 통해 미래에셋 펀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여 나갔다.

이즈음 동원증권의 사장이던 김남구 한국금융 대표가 승부수를 띄우며 미래에셋에 도전장을 냈다. 펀드의 종가(宗家)였던 한국투신증권과 한투운용을 2005년 인수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의 합병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한국금융은 순식간에 펀드시장의 강자로 등장해 미래에셋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김 대표는 한국밸류자산 설립을 통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이채원 전무가 운용하는 ‘10년 투자펀드’는 가치투자의 전형을 보여주며 올 상반기 최고 수익의 펀드로 이름을 날렸다. 김 대표는 또 국내 최초의 베트남 펀드를 설정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금 인도네시아 등 주변 동남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다양한 펀드의 출현
펀드시장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펀드들이 속속 등장했다.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전개했던 장하성 고려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불리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KCGF)를 선보였다. 장하성 펀드는 태광그룹 계열 대한화섬을 시작으로 1년여 동안 10여 개 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며 지배구조와 인색한 배당 등을 문제 삼았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의 변양호씨는 토종 사모펀드의 기치를 내걸고 2005년 보고펀드를 설립했다. 그는 론스타와 칼라일 등 외국 사모펀드들의 독주를 견제하며, 국내 기업들이 외국계 펀드의 수중에 손쉽게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겠다고 했다. 보고펀드는 올해 초 아이리버 브랜드로 유명한 레인콤에 6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동양생명보험 지분을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다.

중견 운용사들 틈새 공략 성공
스타 펀드매니저 출신인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마켓스타 펀드로 올 상반기 펀드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켓스타펀드는 상반기 중 미래에셋 펀드들을 물리치고 단일 펀드로는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 모았다.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의 조재민 사장은 주식편입비율이 40~70%인 안정성장형 펀드 시장의 최강자다. 지난달 31일 현재 자산규모 500억원 이상의 안정성장형 펀드 수익률 상위 5위권 중 이 회사 펀드가 4개를 차지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펀드시장의 신예 리더로 강방천 에셋플러스투자자문 회장을 주목하고 있다. 주식투자의 맥을 잘 짚기로 유명한 강 회장은 올 연말 자산운용사를 설립해 펀드시장에 도전장을 낸다. 그는 동아시아의 명품 소비시장을 주도할 기업들에 향후 100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상품을 내년 초부터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이를 위해 현재 중국에 머물며 중국 시장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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