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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다 보면 말기 암도 달아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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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말기 직장암을 극복하고 중앙서울마라톤에서 풀코스 완주에 도전하는 주석완씨가 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훈련하고 있다. [고양=변선구 기자]

"중앙서울마라톤은 내가 얼마만큼 암을 이겨냈는지 시험해 보는 무대입니다."

지난해 3월 말기 직장암 판정→8월 종양 제거 수술→올 2월 2차 수술→11월 중앙마라톤 42.195㎞ 완주 도전.

주석완(43)씨는 지난해 2월 종합검진 결과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시중 은행 영업직 과장이던 주씨는 업무 특성상 고객 접대 등으로 회식이 잦았다. 하루에 소주 10병을 마실 정도로 '주당'이던 그의 음주 습관이 암 발병의 큰 원인이라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 항암치료부터 시작해 두 차례의 수술과 재활 등 1년여에 걸친 주씨의 기나긴 투병 레이스는 이렇게 시작됐다.

1997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도 살아남은 그였지만 이번엔 진짜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주씨는 "동대문상고(현 청원고)를 졸업하고 83년 당시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입사한 뒤 합병 과정에서 고생도 많이 해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다"며 "아내에게는 일주일 넘게 암 발병 사실을 숨겼다"고 말했다. 투병 과정에서 5분도 못 걸을 정도로 체력이 약해졌고, 1m76㎝의 키에 95㎏ 정도이던 체중이 60㎏ 이하로 빠졌다.

그러나 그를 지켜준 것은 달리기였다. 바쁜 업무 중에도 2000년 초부터 '일산 철인클럽'과 '일산 호수마라톤 클럽'에 가입해 암 발병 이전에 10회 이상 풀코스를 뛰었던 주씨는 병마와 싸우는 길이 마라톤과 같다고 생각했다.

주씨는 "마라톤은 35㎞ 지점에서 숨이 끊어질 정도로 힘들다"며 "말기암 판정을 받는 순간 내가 지금 35㎞ 지점에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5㎞의 고비만 넘기면 완주의 기쁨을 맛보듯 반드시 암과 싸워 이겨냄으로써 새 인생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일산 국립암센터에 입원해 두 차례의 수술을 받는 동안 병원의 양해를 받아 환자복 대신 운동복을 입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챙이 있는 운동 모자를 썼다. 꿈에서라도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자신을 그리며 암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몸부림이었다. 철인클럽 동호인 50여 명도 노란색 리본에 쾌유를 비는 글을 써서 용기를 줬다.

몸 상태는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다. 치료를 맡았던 암센터의 정승용 박사는 "회복 속도가 무척 빠르다"며 놀라워했다. 주씨는 1차 수술 후 옆구리에 달았던 인공 항문을 남들보다 한 달 이상 빨리 제거했다. 현재는 수술 부위를 연결시키는 봉합수술을 거쳐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 중이다. 주씨는 "평소 운동을 틈틈이 해놓은 것이 치유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었다. 달리기가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현재 휴직 중인 그는 내년 1월 복직을 목표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다. 직장암 후유증으로 아직 괄약근 조절이 힘들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의 집 근처에서 하루에 달리기 20여㎞, 수영 4㎞를 하며 서너 시간씩 운동한다. 9월과 10월에는 경북 울진과 인천에서 열린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대회에도 나갔다. 완주는 못 했지만 자신감은 얻었다.

4일 오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을 출발해 성남을 돌아오는 중앙 서울마라톤 코스에서 그는 완주의 꿈에 부풀어 있다.

고양=김종문 기자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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