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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 해결사 '시각장애인 셜록 홈즈 6인'

중앙일보

입력

벨기에에서 귀가 아주 밝은 시각장애인 6명이 경찰 도·감청반에 특채돼 테러나 마약조직, 조직폭력배 등 강력범죄 해결을 위해 맹활약하고 있다.

31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따르면 이 경찰은 범죄조직에서 도청한 내용을 듣고 동료 경찰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단서를 척척 찾아낸다 해서 '시각장애인 셜록 홈즈’로 불린다. 활약상이 추리 소설에 나오는 명탐정에 버금간다는 뜻이다.

벨기에 연방경찰청은 올 6월 도청 내용 분석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 이들을 뽑았다. 처음에 경찰 내부에서 “우리는 경찰이지 자선단체가 아니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이들의 진지한 자세와 업무 능력을 보고 태도가 바뀌었다.

그 중 한 명인 사차 반 루(36)는 도청 자료에서 자동차 소리를 들으면 현대차인지, 도요타인지, 벤츠인지를 가릴 수 있다. 전화기 누르는 소리만 들어도 번호를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주변 소음만으로 전화를 거는 곳이 공항인지, 커피숍인지 파악할 수 있다. 폴 반 티에렌 경찰청장은 “그의 듣기 능력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퍼 히어로’급”이라고 말했다.

반 루는 최근 마약 밀매업자 검거에 큰 공을 세웠다. 경찰은 처음엔 모기 소리만한 마약 밀매업자의 도청 녹음을 듣고 모로코인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반 루가 알바니아인이라고 해 이를 근거로 범위를 좁혀 수사한 결과 검거에 성공했다. 이는 그가 7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기에 가능했다. 영어나 프랑스어뿐 아니라 러시아어, 아랍어도 막힘 없다. 같은 아랍어를 써도 범죄혐의자가 이집트인인지, 모로코인인지를 구별할 정도다.

이들은 테러 수사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테러범들은 도청을 우려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예민한 귀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대화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경찰은 이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청사에 말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한 대에 1만 유로(약 1300만원)나 되는 점자 키보드와 음성 인식 시스템을 갖춘 컴퓨터도 지급했다. 이들이 바깥에 나갈 때는 개인용 위성추적시스템(GPS) 장비를 지급해 음성으로 목적지까지 안내한다.

반 루는 “시각장애인이 도로를 건너거나 기차를 탈 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청각을 발달시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범죄현장에서도 활약할 수 있는데 총기를 지급하지 않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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