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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 때문에 … 환경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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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린란드 나르사수아크 초원에서 양 떼가 풀을 뜯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그린란드 남부에선 얼음이 아닌 초원으로 덮인 지역이 자주 눈에 띈다. [나르사수아크=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제공]

이누이트족이 개 썰매를 끌며 바다코끼리를 사냥하던 동토가 농부가 양 떼를 모는 드넓은 초원이 됐다. 80%가 얼음으로 뒤덮인 한반도 열 배 크기의 섬. 북극권의 그린란드(Greenland)가 이름처럼 '녹색의 땅'으로 변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8일 보도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그린란드의 온난화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다. 덴마크 기상청에 따르면 그린란드는 최근 30년간 평균 기온이 1.5도 올랐다. 세계 평균의 두 배다. 이미 북유럽의 기온에 근접했다. 21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따뜻한 온대기후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겨울이 짧아져 5월 중순 시작되던 봄이 4월 말이면 찾아온다. 경작할 수 있는 기간도 1970년대에 비하면 3주가량 길어졌다. 경작지도 네 배로 넓어졌다. 간신히 감자나 재배하고, 야채는 모두 덴마크에서 공수해 와야 했던 이곳에서 자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감자는 수t씩 기업형으로 대량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수퍼마켓에서는 올해 처음 '그린란드산(産)' 양배추.브로콜리를 선보였다. 텃밭이나 정원 가꾸기가 유행처럼 번져 딸기를 재배해 먹는 가정도 생겼다. 그린란드 남부 항구도시 카토르토크 인근의 농업연구센터에서는 화초 재배에도 나서 국화.제비꽃.피튜니아 재배에 성공했다. 그린란드 전역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각종 식물이 자라는 걸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변화는 뭍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온이 따뜻해져 사라진 어족을 불러들였다. 차가운 바닷물 때문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대구가 돌아왔다. 빙하가 녹아 바닷길이 열린 극지방까지 올라간 새우잡이 배들은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환경의 재앙이라지만 그린란드에 터전을 잡은 5만6000명에게는 기회이자 희망이다. 그린란드 농업 고문인 케네스 호그는 "머지않아 남부 지방은 채소밭이나 우거진 숲으로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지금까지 추운 날씨 탓에 우리 삶에 수많은 제약이 따랐다. 온난화 덕에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그린란드=북극해와 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으로 자치권을 가진 덴마크 영토다. 10세기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당한 바이킹족 '에릭 더 레드(Erik the Red)'가 이 섬을 발견했다. 그가 이주민을 끌어 모으기 위해 숲이 우거진 낙원인 양 '그린란드'라고 부른 데서 정반대의 이름이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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