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일흔에 전직했어, 발명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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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예애 할머니가 자신이 발명한 발로 밟는 수도꼭지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뒤로 사훈과 각종 특허증이 걸려 있다.

"돈을 버는 것은 둘째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아실현입니다. 누가 뭐래도 수돗물 절수운동에 조금은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요."

할머니 발명가 김예애(78)씨는 요즘도 늦게까지 잠을 못 잔다고했다. 노년 불면증 때문이 아니다.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궁리하느라 그렇다.

김씨는 '발바리'라는 이름의 수도장치를 개발해 현재 주식회사 이지벨브의 사장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경영인은 아니었다. 원래는 서울시내 초등학교에서 18년간 교편을 잡은 교사다. 그 뒤 김의명이라는 예명으로 자수작가로도 활약하던 김씨가 발명가가 된것은 나이가 거의 70을 바라보던 10년 전. 주부들이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 물을 계속 틀어놓는 걸
보고서였다.

'알뜰 주부들이 왜 그럴까?'김할머니는 물이 아깝지만 설거지를 하면서 수도꼭지를 잠갔다 열었다 하기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란 걸알게 됐다. 거기서 '그렇다면 수도꼭지를 발로 조작하면 어떨까'하는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려고 을지로 뒷골목을 수없이 드나들며 기술자들을 만났지만 모두 안 된다고하네요. 참 기가 막히더군요. 달나라에도 가는 세상에 말입니다.

주변에선 "노후에 편안히 그냥살라" 며 만류했고 "노인네가 주책" 이라는 비난도 나왔다. 김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결국 3년여 만에 개수대 아래에 부착된 페달의 오른쪽을 밟으면 찬물이, 왼쪽을 밟으면 더운물이 나오고, 둘을 동시에 밟으면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이른바 발바리를 만들어 냈다.

그의 사무실 뒷벽에는 '반드시 더 나은 방법이 있다' 라는 사훈이 걸려 있다. 그는 요즘도 밤 늦게까지 발명에 관한 일본 서적을 읽는다. 지금까지 모두 5건의 발명을했다. '발바리' 장치는 2000년 미국과 일본에서도 특허를 받았다. 지난달에는 개수대용 자동-수동 겸
용 수도꼭지도 개발, 실용신안특허를 출원해 놓고 있다. 여성벤처협회. 여성발명협회 회원인 그는2004년 특허청 주최 여성용품 및 발명품 박람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 같다"며여자들이 남자보다 빨리 늙는다고 하는데 그건 하는 일이 없거나하고 싶어도 할 일을 찾지 못하기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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