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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수들의 영원한 '로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호 04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는 보통 4번타자가 아니다. 역사와 자존심이 배어 있는 자리다.

자이언츠 역대 4번타자

자이언츠의 4번타자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단 한 번이라도 4번타자에 오르면 ‘제○대 거인군 4번타자’란 기록을 남겨 공표하며 칭송한다. 말하자면 요미우리의 4번은 ‘가문의 영광’이자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의 ‘꿈’이다.

요미우리에는 4번타자 관련 규칙이 따로 있다. 시합 도중에 4번에 들어간 선수, 선발에 이름만 올린 이른바 ‘정찰(偵察)용’ 선수는 제외한다.

역대 73명이 있었지만 요미우리의 4번 자리는 영광인 동시에 중압감 그 자체다. 팬·동료들의 기대와 감시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웬만한 정신력 없인 버티기 힘들다. 이를 입증하듯 73명의 역대 요미우리 4번타자 중 10게임도 채우지 못하고 4번에서 물러난 경우가 절반 가까운 33명이나 된다. 또 그중 13명은 단 한 경기만에 4번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난다 긴다 하는 요미우리의 4번타자라도 같은 4번타자가 아닌 셈이다.

역대 73명의 요미우리 4번타자 중에는 ‘제7대 4번타자’인 가와카미 데쓰하루(川上哲治)가 1658경기에 4번으로 등장해 역대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걸쳐 ‘타격의 가미사마(신의 존칭어)’로 불렸다.

흥미로운 점은 가와카미가 군대에 입영해 있던 43년에서 46년 시즌에 걸친 4년 동안 7명이나 4번타자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전쟁으로 선수가 부족해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4번에 기용하거나 신인 선수를 4번에 앉힐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이어 제25대 4번타자인 나가시마 시게오(1460경기), 28대인 오 사다하루(1231경기)가 가와카미의 기록을 잇는다. 니혼햄에서 이적한 한국인 하리모토 이사오(장훈)는 나가시마가 은퇴한 후 주로 3번을, 오 사다하루가 4번을 맡았다.

‘오 사다하루-나가시마’ 콤비, 즉 ‘ON포(영문 이니셜을 따 붙인 명칭)’가 은퇴한 후 80년대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4번을 맡은 선수가 바로 현재의 요미우리 감독인 하라 다쓰노리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치며 ‘와카다이쇼(젊은 대장)’로 불렸다. 제48대 4번타자로 1066시합에 출장했다.

그리고 하라를 보완하는 형태로 45대 나카하타 기요시, 50대 워렌 클로마티가 각각 200경기가량 4번을 맡았다.
요미우리의 4번의 성격이 확 뒤바뀐 것은 94년부터다. 93년 시즌이 끝난 후 프로야구에 FA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다른 구단에서 계약기간이 끝난 외국인 용병 선수나 강타자를 FA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데려와 4번타자에 앉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렇게 되다 보니 93년 이후의 4번타자를 보면 1000경기 이상 4번으로 뛴 선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맘에 안 들거나 부진하면 바로 갈아치운 것이다.

94년 요미우리 구단 최초의 FA입단 선수가 된 오치아이 히로미쓰(현 주니치 드래건스 감독)는 주니치로부터 이적을 한 94년부터 96년까지 3년간 제60대 4번타자로서 331시합을 4번으로 뛰었다. 그가 재적한 3년 동안 요미우리는 두 번에 걸쳐 리그 우승을 이뤘다.

97년부터 2004년까지는 62대 마쓰이 히데키(현 뉴욕 양키스), 64대 기요하라 가즈히로, 66대 다카하시 요시노부가 4번타자를 바꿔 맡았다. 95년 처음으로 4번에 오른 62대 마쓰이는 기요하라, 도밍고 마르티네즈 등에 치여 3번으로 자리바꿈을 하게 되는데 이는 “이리저리 치이지 않을 때 마쓰이를 4번에 앉혀 1000경기 이상 뛰게 해야겠다”는 당시 나가시마 감독의 ‘마쓰이 사랑’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실제 마쓰이는 2000년 개막전부터 2002년 시즌 말까지 전 경기에서 4번을 맡았다.

2002년 말 마쓰이가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다카하시가 4번에 들어섰지만 그는 ‘고정 4번’이 되지 못했다. 이후 고쿠보, 로베르타 페타지니 등 수많은 선수가 4번을 번갈아 맡는 ‘4번 난립’의 시대가 계속됐다. 이를 평정한 것이 바로 제70대 4번타자 이승엽이다.

올 시즌 후반 이승엽의 부상 때문에 니오카, 아베, 오가사와라가 잠시 4번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세 선수 모두 10경기 이상 4번을 지키지 못했다. 니오카의 경우 4번을 맡은 게 단 1게임이었다. 그런 점에서 ‘4번 이승엽’의 진가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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