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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억짜리 150살 조선송 9개월간 파내 경매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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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경업을 하는 김모(56)씨는 올해 초 충남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국립공원 인근에 박물관을 차렸다. 도자기 등을 전시해 놓았지만 이 건물은 국립공원 내에서 불법으로 캐낸 소나무를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김씨를 포함한 일당 13명은 이런 방법으로 국립공원 등에서 자생하는 소나무 30억원어치(경찰 추산)를 불법으로 반출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2005년 9월 경북 포항 북구 기북면 용기리에 있는 5공 실세 허화평씨의 문중(양천 허씨) 산에서 시가 12억원 상당의 소나무(사진)를 훔쳤다 적발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양천 허씨 문중 산에 값비싼 나무가 많다는 소문을 듣고 1년 전부터 조경업자들과 현장을 답사하며 범행을 모의했다. 이들은 해발 800m에 있는 소나무를 빼내기 위해 2005년 초부터 9개월에 걸쳐 뿌리와 흙을 분리하는 '뿌리 밑 돌리기'를 한 뒤 주변 나무를 제거하고 계곡 주변에 길을 내 소나무를 옮겼다.

허씨 문중 산에서 빼돌린 소나무는 수령이 150년 된 조선송(朝鮮松)으로 중부권 이남에서 보기 드문 수형(樹形)을 갖춰 시가 1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시청에 이 나무를 심은 영일조경 이병기(57) 사장은 "이 나무는 높이 3m에 굵기는 50㎝로 줄기가 다섯 번 좌우로 휘어졌다 바로 선 형태로 아주 희귀하고 껍질의 문양이 좋아 최고급 관상용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이 나무를 경매에 부치려 한다는 소문을 들은 문중 산 관리인이 경찰에 신고해 붙잡혔다. 경찰은 이 나무를 허씨 문중에 돌려줬지만 허화평씨의 동생 화남씨가 "이미 절도된 소나무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다시 심는 것보다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해 현재 포항시청 정원에 심겨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김씨 등은 새벽 인적이 드문 틈을 이용해 계룡산 인근 S식당 정원의 70년 된 소나무 두 그루(시가 5000만원)를 빼내 시중에 판매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소나무를 훔치기 위해 2년 전부터 현장을 답사해 범행 대상 나무를 선정한 뒤 6개월에서 2년여 동안 가지치기와 뿌리 밑 돌리기를 하고 운반책과 장비 동원책, 판매책 등으로 임무를 나눠 범행을 저지르는 등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 2명은 계룡산국립공원 장군봉에서 수령 300년 된 소나무(시가 3억원 상당)를 훔쳐 공주의 한 조경업체에 보관하고 있다가 소나무 DNA를 토대로 수사한 충남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해 9월 구속됐다. 이후 경찰의 수사 확대로 나머지 11명의 일당이 이번에 붙잡혔다.

대전=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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