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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고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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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 중 하나인 주유는 음악에 밝았다. 권문세가 출신이었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문재(文才)가 풍부했던 조조만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전장(戰場)을 호령하는 장수치곤 예술적 감성이 꽤 발달했던 인물이었지 싶다.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서도 음악이 들릴라 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악공의 연주가 완벽하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반드시 이를 지적했다. 귀에 거슬리는 연주를 두고 보이는 그의 반응이 재미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그에 관한 기록을 보면 “(음악에) 잘못이 있으면 주유는 반드시 이를 알아챘고, 그 다음에는 꼭 뒤를 돌아봤다(知之必顧)”고 적혀 있다. 그냥 넘어가기를 바랐던 연주자에게는 주유가 참 무서운 사람이었겠다. 연주가 틀린 대목에서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돌려 바라보는 장수의 풍모가 정말이지 예사롭지 않다. 어떤 경우에서 잘못이 생겨나자 누군가 돌아본다는 뜻의 ‘고곡(顧曲)’이라는 성어가 예서 유래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유비와 제갈량의 능력을 크게 과장하는 바람에 ‘적벽대전’의 실제 주인공인 주유의 역할은 축소됐다. 정사(正史)에 나오는 그의 실제 비중은 알려진 것에 비해 훨씬 대단하다. 전쟁 영웅의 깊은 음악적 소양과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의 이채로움이 세인의 이목을 잡아 끌 만하다.

그래서 당나라의 이단이라는 시인은 “마음 둔 이의 눈길을 받으려면, 때때로 줄을 잘못 튕길 것이니(欲得周郞顧, 時時誤拂弦)”라는 명구를 남겼다. 일반 민간에서는 그의 일화를 두고 “곡이 틀리면 주유가 돌아본다(曲有誤, 周郞顧)”는 말을 만들었다.

이 고사가 떠오르는 것은 우리 대통령의 잦은 고개 돌림 때문이다. 대통령은 “잃어버린 지난 10년…”이라는 말에 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서는 “신고하면 찾아 주겠다”는 말로 대꾸를 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기다렸다는 듯 ‘10년 동안 잃어버린 것의 목록’까지 작성하며 공세다. 대통령은 다시 “한나라당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져라”고 대응한다. 괜한 평지풍파다.

주유처럼 돌아보되 대꾸를 안 하는 것은 어떨까. 귀에 거슬리더라도 말 없이 돌아보는 선에서 장을 정리하면 더 우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평가는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반박하느라 그동안 너무 많은 품을 팔지 않았는가. 아주 지나칠 정도로.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