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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유치 = 대학 발전’ 환상 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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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에도 2009년 3월 로스쿨(법학 전문대학원)이 문을 열게 됐다. 전국 98개 법대 중 47개 대학이 로스쿨 인가를 받기 위해 수십억원 이상 투자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로스쿨 유치 실패 후 대학들이 겪을 후유증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대학들이 로스쿨을 유치하면 모든 것이 성공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는 데 있다. 그들은 로스쿨 유치 뒤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로스쿨은 변호사 자격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졸업생 대부분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면 로스쿨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로스쿨 입학생은 학교별로 사정해 결정하지만, 변호사 자격증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시험을 실시해 합격자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예정된 바로는 졸업생의 70~80%가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로스쿨 졸업생에게 세 번까지 응시 기회를 주는 것을 전제로 계산해 보자. 일단 계산상 편의를 위해 한 해 전국에서 1000명이 졸업하고, 그중 70%를 합격시키는 선에서 변호사 자격시험을 운용한다고 치자. 첫해에는 700명이 합격하겠지만, 다음 해에는 졸업생 1000명과 전년도 불합격생 300명을 합해 1300명이 응시할 것이다. 그중 700명이 합격하면 합격률은 53.8%가 된다. 그 다음 해에는 졸업생 1000명과 탈락자 600명을 합친 1600명이 응시하고 합격률은 43.8%(700명)가 된다. 그 후의 합격률은 그 선을 유지할 것이다. 응시 자격을 상실한 불합격자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합격률은 그리 높지 않다. 로스쿨을 설치해 두 번 변호사 자격시험을 실시한 일본의 경우 지난해 합격률은 47%, 올해 합격률은 40%였다.

그런데 문제는 로스쿨마다 합격률이 다를 것이란 점이다. 학교별로 학생 자질, 교육 여건, 교육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합격률이 높은 로스쿨은 우수 인재가 몰려 더욱 발전하고, 합격률이 낮은 로스쿨은 지원자가 점차 감소해 폐교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도 양극화되는 것이다. 변호사 자격시험 합격률을 당해 연도 응시생 대비로 운용하면 합격자를 늘릴 수 있지만, 로스쿨 양극화는 막을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론 합격자 질이 심각하게 저하되기 때문에 채택할 수도 없다.

따라서 로스쿨 인가를 받으면 더 극심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일단은 현재 우수한 대학으로 꼽히고, 사법시험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대학의 로스쿨이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장학제도·기숙사·도서관 등 복지·교육시설, 우수한 교수진, 효과적인 교육 방법 등을 갖추면 지명도가 낮거나 소규모 로스쿨도 얼마든지 명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엄청난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도퇴해 폐교될 수 있다.

로스쿨 설치 대학에는 학부에 법대·법학과를 둘 수 없다. 그런데 로스쿨을 폐교할 경우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법대·법학과를 설치할 수 있겠는가. 엄청나게 투자한 시설과 인적자원, 학생·교직원들의 사기와 학교 전통은 어떻게 되는가. 차라리 인가 받지 못한 것보다 못할 것이다. 대학들은 인가 뒤 닥쳐올 시련을 내다보고 이를 감내할 자신이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채방은 변호사·상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