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운전자와는 결코 눈 맞추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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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일진이 정말 사납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누구든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그런 상태로 핸들을 쥐고 길로 나섰는데, 누군가가 당신의 화를 돋운다면 어떨까?

이것이 가장 전형적인 ‘노상 분노(road rage)’ 다.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자들이 서로 험악한 말과 제스처를 교환하고, 과격한 운전으로 서로를 위협하다 못해 끝내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지게 마련이다. 노상 분노는 10년 전 음주 운전만큼이나 현재 교통안전과 관련해 세계 각국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는 곳은 놀랍게도 미국 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한 인터넷 사이트(www.roadragers.com)다.

이 사이트는 1999년 개설 직후 8개월만에 전세계 4만5000여명의 열혈 지지자들을 끌어 모아 미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한 온라인 고백 사이트가 분노한 운전자들을 안정시켜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상 분노를 다스리는 이 사이트의 비법의 핵심은 자신을 괴롭힌 차량 모델과 번호, 사건 발생 지점을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당시 사연도 그대로 써서 올린다. 그러면 해당 차량과 운전자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분노도 눈녹듯 사라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떤 자식이 갑자기 끼어들자 나는 그 차를 쫓아가 길 옆으로 밀어붙이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라디오 채널을 더 조용한 곳으로 돌리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20분 후 나는 안전하게 집에서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다치지도 않고, 교통 위반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내키는 대로 화를 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겠는가?”

이 사이트의 인기는 최근들어 더 폭발적이다. 많은 미국 언론들이 이 사이트의 주요 사연들을 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폭스(FOX) TV는 사이트에 올라온 극적인 동영상을 틀거나 사연을 방송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전히 사연들은 미국의 대도시 중심이지만, 점차 세계인들의 참여도 늘고 있다. 홈페이지에 한국어 게임 광고가 게시되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참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사이트 측에서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인터넷 설문 조사는 노상 분노의 심각성을 요약해준다. 운전 중 다른 운전자가 화나게 하는 일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83%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스트레스(31.2%), 익명성으로 인한 공격 성향(30.5%) 때문이라는 답에 이어, 누구나 바쁘고(24.7%), 일부 불안정한 사람이 있기 때문(13.6%)라는 응답 순이었다.

노상 분노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이 사이트가 제시하는, 노상 분노를 피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공격적인 상대 운전자와 절대 눈을 맞춰선 안 된다. 험상궂게 상대방을 바라보면, 상대방은 더욱 화를 내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빨리 공격적인 운전자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바로 목적지에 이르는 다른 길을 찾아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필요하다면, 잠시 주차해서 열을 식히는 것도 좋다.

만일 상대방 운전자가 당신 차를 쫓아온다면,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럴 때 바로 집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 가까운 파출소로 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자신의 힘으로 공격적인 운전자를 따돌려 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궁극적으로 노상 분노가 사라지려면 운전자들의 상호 존중이 전제돼야 한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어하는 대로 상대방을 대우하라는 지적이다.

참고로 이 사이트가 노상 분노 방지를 위해 제시하는 10가지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1. 절대로 보복하지 마라

2. 화가 난 운전자와는 눈을 마주치지 마라

3. 상대방이 나에게 한 일에 대해 반응을 하기 전 자신에게 물어보라.‘저 바보 때문에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

4. 상대방의 태도를 불문하고 정중하고 공손하라

5. 상대방 운전자가 실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은 아닌지 언제나 자문해보라

6. 상대방 운전자가 당신을 괴롭히고 쫓아온다면, 집으로 가지 말고 가까운 파출소를 찾으라

7. 속도를 줄이고 여유를 가져라

8. 상대방이 당신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9. 목적지 도착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여라. 공사 구간이 어디인지 미리 알고, 교통 체증을 유발할 일기 예보도 경청하라. 인내심을 기르고 평정심을 유지하라.

10. 주변의 운전자들을 통제할 수 없지만, 그들이 당신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통제할 수는 있다. 침착하고 안전하게 운전하라

이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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