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선 판에 다시 등장한 향우회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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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 선거 판에 또 향우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제 열린 충청향우회 행사에 이명박·정동영 등 후보 다섯 명이 참석해 ‘충청도 중심시대’라는 아첨성 발언을 늘어놓았다.

조그만 땅덩어리의 나라에 호남이다 영남이다 충청이다라고 하는 향우회가 과연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이런 후진적 문화는 통합을 해치고 지역감정을 자극한다. 한국인에게서만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향우회 문화는 재외동포 사회에도 만연돼 교포 간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향우회 문화는 선거 때 더 문제다. 국민통합을 지향해야 할 후보들이 표의 압력에 눌려 허언(虛言)이나 잘못된 공약을 일삼는다. 이날 행사엔 별도의 인사말은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기자들에게 “충청권이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충청인이 한국의 중심·중앙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충청 수도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어느 지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 지역이 이 나라의 중심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은 다르다. 충청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되면 국제화 시대에 서울·수도권의 경쟁력은 어떻게 되는가. 현 정권이 요란하게 추진한 서남개발은 다음 정권에선 변방으로 밀려난다는 말인가. 행정수도나 새만금 개발·호남고속철도 같은 대형 공약은 내놓지 않았으니 ‘충청 중심’은 덕담 수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덕담도 쌓이면 마음의 빚이 되고 빚은 공약이 되며 터무니없는 지역 공약은 국가에 깊은 주름을 남긴다. 5년 전 노무현 후보는 충청 표를 노려 행정수도라는 위헌 공약을 내놓았다. 위헌 결정이 났는데도 그는 행정중심 복합도시라는 변형으로 끝내 치달았다.

행사에서 향우회 총재는 “이제는 ‘핫바지’ ‘멍청도’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표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주자는 뜻일 것이다. 경상도가, 전라도가, 충청도가 표를 몰아준다면 대한민국은 누가 세우겠는가. 한국이 선진국으로 성숙하려면 이 향우회 문화와 과감히 절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