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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사들 '제자가 타켓' 성적 학대 만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례 1:초등학교 3학년 때 히더 클라인은 담임 교사인 트로이 맨스필드에게 점찍혔다. 학교 축구팀 코치였던 그는 수시로 히더를 불러내 자기 무릎에 앉힌 채 차에 태우고 다녔고 선물 공세를 펼쳤다. 수년 간 관계가 지속되며 히더는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 하다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히더의 엄마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기 전까지 누구도 맨스필드를 의심하지 않았다.

2004년 열린 형사 재판에서 그는 31년 형을 선고받고 펜실베이니아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법정에서 히더는 열렬한 사랑 고백과 성적 표현이 담긴 맨스필드의 이메일과 인스턴트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현재 18세인 히더는 "나는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 아기에서 곧장 성인으로 탈바꿈한 셈"이라고 한탄했다.

#사례 2:미시건주 초등학교 교사였던 애론 M 브레빅은 스포츠 가방 안쪽에 카메라를 숨긴 채 남학생 탈의실과 샤워실에 들어가 몰래 촬영을 일삼았다. 잠든 소년을 성희롱하기도 했다. 결국 꼬리가 잡힌 브레빅은 유죄 판결을 받고 장기 복역수 신세가 됐다. 그는 이미 미네소타주 한 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두 명의 소년을 호텔방으로 유인했다가 교사 면허가 영구 정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시건주 교육 당국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를 고용했다가 어린 학생들을 추가 피해자로 만든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AP통신은 지난 7개월 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심층 취재를 한 결과 2001~2005년 간 2570명의 공립학교 교사가 성적 학대 혐의로 교사 자격이 박탈되거나 징계 처분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중 1801명이 미성년자를 학대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들 피해자의 80% 이상이 학생들이었다. 또 가해 교사 10명 중 9명은 남성이고, 한 교사가 여러 명의 학생을 성적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교사에 의한 성적 학대가 만연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신고되거나 교사가 처벌받는 비율은 극히 낮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우선 피해자인 어린 학생들이 학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관련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적 학대를 당한 어린이 10명 중 한 명 만이 가족이나 믿을 만한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를 들은 교사나 학교 당국, 일부 부모들은 아동이 심각한 범죄행위의 피해자가 됐다는 걸 종종 깨닫지 못한다고 이 통신은 지적했다.

소송 등으로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해 학교 교장 등 관리자들이 가해자와 피해 가족 간에 조용히 타협을 보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주 정부나 의회에서도 교사 집단의 반발을 살 것을 우려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길 꺼리는 상태다. 로버트 캔서스 주립대 교수(교육학)는 "문제 교사가 특정 학군에 흘러들어온 것이 밝혀져도 일단 그들이 그 학군에서 사라지기만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으로들 여긴다"고 꼬집었다.

최근 들어 미국 각 주가 교사 채용 시 경력 조회, 지문 날인, 성적 학대 사실 보고 등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학군과 학군, 주와 주 사이의 정보 공유는 미흡한 상황이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또 교사 채용시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고 교사가 탈선을 저질러도 공적인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사립학교의 실태는 거의 파악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30년 간 학교 내 성적 학대문제를 담당해온 변호사 메리 조 맥그레이스(캘리포니아주)는 "내 경험으로 미뤄볼 때 미국 전국적으로 학군마다 적어도 한 명씩의 가해 교사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최근 가톨릭 성직자에 의한 미성년자 성적 학대가 대대적인 사회 이슈로 등장한 바 있다. 가톨릭 교계의 자체 조사 결과 1950~2002년 사이에 4400명의 성직자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됐다. AP 통신은 "성직자의 성적 학대 문제가 국가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 반해 교육계의 문제는 묻혀 있었다"며 "지난 몇 년 간 이를 쉬쉬해온 교육 당국에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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