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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m 불경 병풍, 세상에 펼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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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번에 공개할 168폭 묘법연화경 병풍 앞에 선 이성조씨.

6만9384자 묘법연화경(법화경)이 168폭 120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병풍으로 만들어져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대작을 완성한 사람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원로 서예가 남석(南石) 이성조(70)씨.

“나이 60을 갓 넘긴 어느날 부처님이 직접 설법한 법화경을 한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부처님의 정신세계를 일반인들이 제대로 배우고 새겼으면 하는 뜻에서였죠. 한 폭에 10줄로 33자씩 쓰는 작업에 곧바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예서체로 법화경을 쓰면서 두문불출했다. 대형 병풍을 만들기 위해 법화경 7권을 세번이나 필사하는 초인적인 노력이 들어갔다. 꼬박 3년이 걸려 4년 전에 마무리했다. 붓 50자루를 버렸고 병풍 높이 2m에 표구에만 4800만원이 들었다. 온종일 바닥을 내려다보며 글씨 쓰는 작업이었다. 불심 덕분인지 감기 몸살 한번 앓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탈이 났다. 실명 위기까지 갔다. 작품을 완성한 뒤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한쪽 눈은 지금도 사물의 형체만 어렴풋이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잘 알고 지내는 한 스님이 불사를 일으키는 데 필요하다며 안동의 한 사찰로 빌려가 보관해 오다 절이 번성하자 최근 되돌려줬다. 그의 제자들은 법화경 병풍에 대해 기네스북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이 병풍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캄보디아 왕사(王師) 텝봉 종조도 전시일에 맞춰 대구를 찾는다.

이 병풍 외에 이씨는 반야심경을 액자로 꾸민 1080점과 8폭 병풍 108점, 금강경, 도연명 시, 퇴계 선생 성학십도 12폭 병풍 등 모두 2000여점을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 전체를 빌려 6일 동안 고희전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 이씨는 성철 스님 등 자신이 인연을 맺었던 500명에게 헌정하는 간단한 글씨들도 선보인다. 개인 전시 규모로는 국내 최대다. 33번째 개인전으로 지난 12년 동안 작업실인 대구 팔공산에서 칩거하며 완성한 작품들이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그와 불교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그를 서예의 길로 끌어 준 스승도 스님인 청남 오제봉 선생이다. 이씨가 28세에 쓴 보현행원품(화엄경의 마지막 장)을 해인사 백련암에 기거하던 성철 스님이 소장하는 인연으로 재직 중이던 안동중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불교에 귀의했다. 속세의 삶이 허전한 데가 있었는데 성철 스님과 접촉하다 느낀 바가 있어 불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속세와의 인연을 끊지 못해 8개월여 만에 환속했다.

이씨는 18세 때 서예에 입문했으며 부산대 사범대 미술과를 나와 1959년 제8회 국전에 최연소로 입선한 이후 국전만 13회 입상했다. 해서·행서 일색의 대구 서단에 전서·예서를 들여온 서예가로 유명하다. 서예를 가르칠 때 절대 돈을 받지 않으며 테크닉이 뛰어난 글씨보다 마음이 담긴 글씨를 강조한다.

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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