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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키즈] '책도 예술품' 장인정신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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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매일매일 쏟아지는 책. 정보량도 엄청나다. 지식사회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을 느끼기가 어렵다. 책의 온기를 체감해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자유로를 타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들어서 경모공원 쪽으로 가다 보면 3번 게이트가 보인다. 여기서 직진하면 한길사에서 2004년 9월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북하우스(www.heyribookhouse.co.kr)’가 나온다. 북카페·갤러리·콘서트홀·레스토랑 등 다양한 공간이 재미있게 연결돼 있는 곳이다.

 1층에 들어서면 그동안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수집한 세계 희귀본이 전시돼 있다. 위쪽으로는 마치 이 세상 모든 책들을 모아놓은 듯한 공간이 있다. 더 위쪽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독서공간이 있다. 바깥으로 나가면 바로 이어지는 신관 갤러리에서는 요즘 ‘윌리엄 모리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갤러리 입구에 있는 카페 이름도 ‘윌리엄 모리스’다. 윌리엄 모리스(1834~96)가 누굴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장인이다. 북하우스로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천의 재능을 가진 사람’ ‘현대 디자인의 아버지’ ‘미술 공예운동의 주창자’. 수식어만 봐도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예술이 낳은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집이고 그 다음이 책”이라고 말했던 ‘책의 장인’ 윌리엄 모리스.

 “엄마, 이 사람은 직업이 6가지도 넘어요.” 큰아이는 가구·스테인드글라스·벽지·타일·벽화·태피스트리 자수·캘리그래피·인쇄 등에 이르는 모리스의 비범한 재능에 놀라워했다. 그가 죽자 의사는 사인(死因)을 “윌리엄 모리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평생 열 사람 몫의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한다』(한길아트)라는 책을 보니, 모리스가 말년에 만든 ‘캠스콧 프레스’라는 공방에서 펴낸 제프리 초서의 작품집(1896년)은 에센덴 공방의 ‘돈키호테’, 도브스 공방의 ‘성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쇄본 3종’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렇게 전시회에 갈 때는 관련 도서를 미리 읽어보고 가는 게 좋다. 최소한 부모라도 먼저 읽어야 한다. 그래야 전시회에서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고, 아이들의 궁금증에도 적절히 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가 없다면 애써 찾아갔지만 사람들 발길에 휩쓸려 그냥 휙 둘러보고 돌아오기 십상이다.

 “이 사람은 정말 성격이 꼼꼼했나 봐.” 전시회에서 한 장 한 장 버리는 공간 없이 세세하게 디자인된 테두리 장식과 삽화, 글씨를 보면서 장인정신이 어떤 것인가 느낄 수 있었다.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초서는 모리스가 생전 가장 존경했던 작가였다. ‘초서 작품집’은 그 당시 유행했던 금·은 등의 재료나 컬러풀한 잉크를 쓰지 않고 간결하게 디자인된 걸작이다.

나들이 칼럼니스트 홍준희씨가 두 딸과 헤이리에서 열리고 있는 모리스 전시회를 찾았다. 전시물 중 하나인 ‘초서 작품집’ 한 페이지. (사진=헤이리 북뮤지엄 윌리엄 모리스 제공)

 “이런 책들은 정말 비쌀 것 같아, 그렇지?” 둘째아이는 책의 가격을 궁금해했다. 모리스의 책은 애서가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1급 도서관에서 비치목록 1호로 꼽힐 정도로 사랑을 받는다.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20년간 ‘초서작품집’을 포함한 캠스콧 프레스에서 만든 53종 66권을 수집해온 김언호 한길사 대표 덕분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아이들은 “외국은 이렇게 책을 하나 잘 만들어도 굉장히 칭찬하고 인정을 해주는데 우리는 작고 눈에 안 띄는 일은 알아주지 않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도 작지만 위대한 노력으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이들에게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윌리엄 모리스 따라하기’를 해봤다. 모리스가 디자인한 이니셜 장식이 무척 독특했는데, 자신만의 이니셜을 정한 후 지우개에 조각도로 이니셜을 새겨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책도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입장료 성인 3000원, 아이 2000원이다.
 

글·사진=홍준희(나들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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