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노벨 경제학상 코드는 ‘금이 간 시장을 치유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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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21면

블룸버그 뉴스

‘마초들의 상’(여성 수상자 없음), ‘주류 학파의 장식품’…. 노벨 경제학상에 대한 비판들이다. 반면 ‘수상자의 공로가 의심받지 않는 상’ ‘최고 사회과학자에게 주는 상’ 등 찬사도 끝이 없다.

시대에 따라 비판과 찬사가 이처럼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노벨 경제학상에 변하지 않는 성격이 있다. ‘추인과 강조’다. 이론이 탄생해 하나의 학파로 성장한 쪽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상을 받아 존재를 확인(추인)받는다. 또 당대 경제적 화두가 다시 강조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미국 레오니트 후르비치(90·미네소타대), 에릭 매스킨(56·프린스턴고등연구소), 로저 마이어슨(56·시카고대)을 선정했다. 일반인들에게 사뭇 낯선 ‘메커니즘 디자인’을 개척·숙성시킨 인물들이다.

그 이론은 게임이론의 한 갈래다. 시장 참여자들이 패를 다 드러내 보이지 않아(정보의 비대칭) 불완전한 시장에서 게임을 어떻게 디자인하면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답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 왕의 선택’이다. 두 여성이 한 아이를 서로 친자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솔로몬 왕은 그 아이를 칼로 내리쳐 둘로 나눠 가지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한 여성은 반반씩 나눠 갖겠다고 말한 반면 다른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그냥 저 여인이 아이를 키우게 해달라”고 말했다. 진짜 어머니라면 누가 아이를 나누겠다고 하겠는가. 솔로몬은 아주 극단적인 처방을 내렸지만 진실(정확한 정보)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이처럼 “정보가 불완전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거짓으로 행동할 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진실에 가깝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할지를 고안하는 게 바로 메커니즘 디자인”이라고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설명했다.

한림원은 “수상자들은 경제주체들이 상대 정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는 게임이론이 현상을 분석·설명하는 수준을 지나 마침내 처방을 내놓는 ‘원숙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한 셈이다.

게임이론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4년 미국 핵전략을 연구한 랜드연구소의 존 폰 노이먼과 오스카 모르겐슈타인이 처음 제기했다. 이후 경제학자들은 게임이론을 받아들여 경제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하기 시작, 80년대에 이론의 꽃을 피웠다. 마침내

1994·2005년, 그리고 2007년 게임이론가들이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한림원은 왜 이 시점에 후르비치 등 게임이론가들을 다시 선택했을까.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시장의 불완전성’을 2001년 이후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흐름의 연장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시장의 완전성을 가정한 이론을 발전시킨 경제학자들에게 주로 시상했던 1990년대 이전 흐름과 대비된다. 이들은 시장 참여자들이 무제한적으로 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시장은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이 자유롭게 작동하도록 한다면 모든 사람이 윈-윈 하는 최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가정에 뿌리를 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영국에서 마거릿 대처가 총리에 오른 1979년 이후 전 세계의 주류 경제정책 논리로 자리 잡았다. 규제 완화 또는 철폐가 경제정책의 핵심 논리가 됐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말에는 ‘시장 자유화’ ‘시장 중심’ ‘시장 친화’ 등이 빈번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던 2001년 한림원은 시장의 정보 비대칭을 체계화한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조 애커로프, 마이클 스펜서에게 상을 줬다. 시장 참여자가 정보를 무제한적으로 입수·활용할 수 있다는 기존 이론의 가정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쪽에 상을 준 셈이다.

타이밍이 절묘했다. 마침 인터넷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그해 말에는 엔론이 파산했다. 투자자와 경영진의 정보 비대칭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엔론 경영자인 제프리 스킬링은 파산 직전에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보유 주식을 처분했다. 정보에 눈뜬 장님이었던 일반 투자자들은 엔론이 파산하는 바람에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한 해 뒤인 2002년 한림원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이른바 행태주의(행동주의) 금융이론을 개척한 대니얼 카네먼과 버논 스미스에게 영예를 안겨줬다. 이들은 기존 금융이론가들이 굳게 믿어온 ‘시장 참여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가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카네먼은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직관에 의존해 행동하기 일쑤다. 자신의 분석과 판단이 아니라 어떤 순간 눈에 뵈는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인간이 다수인 시장은 합리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런 흐름은 계속된다.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급등락하는 현상을 계량경제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개발한 클리 그란저와 로버트 엥글이 2003년에 상을 받았다.

2004년 한림원은 경제정책 담당자가 분명한 원칙을 사전에 밝히지 않으면 정책 일관성이 유지되기 어렵다고 주장한 핀 키드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에게 상을 주면서 2001년 이후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2005년 다시 시장 불완전성에 주목했다.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인정하며 이론을 전개한 게임이론가 로버트 오먼과 토머스 셸링에게 상을 줬다. 또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에드먼드 펠프스는 고용과 인플레이션 관계를 주로 연구했지만, 이 사람 또한 시장의 비효율성을 야기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경제이론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

거품이던 미 주택시장 침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신용불안 등이 벌어지고 있는 올해의 수상자들은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매스킨 등은 모든 시장 참여자가 정보를 자유롭게 입수·활용한다는 가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다 해결해 준다는 논리도 신뢰하지 않는다. 대신 ‘보이는 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시장이 실패한 상황에서 정부가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을 예측해 적절히 대응(메커니즘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메커니즘 디자인으로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이마저 자신할 수 없는 게 경제학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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