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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너는 세례를 받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對北선교를 담당하고 있는 한 천주교 신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어떤 北韓 젊은이가 延邊에 있는 성당을 찾아왔다.그의 아버지가 臨終때 가족들을 불러놓고『나는 천주교 신자다.
너희도 앞으로 세례를 받아라』고 유언했다.수십년 어둠속에서 간직해온 신앙을 죽음을 앞두고 자식에게 전수한 것이다.아들은 그유언에 따라 千辛萬苦 기회를 만들어 세례를 받기 위해 연변에 온 것이다.
이런 비슷한 경험들은 對北선교에 열성적인 改新敎나 다른 종파서도 겪고 있을 것이다.종교를 철저하게 금지해온 북한 사회의 저변에 그런 신앙의 흐름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주민들도 남쪽 얘기를 다 듣고 있더라는 것이다.북한당국자들이 바람 한점 새어들라 꼭꼭 쳐닫고있는 속에서도 그들은『남쪽은 잘 산대며…』한다는 것이다.자유로움에 대한 인간적인 욕망과 믿음에 대한 渴求가 고립의 벽을 지하수처럼 새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對北정책에서 정부가 정작 가장 중요시해야 할 요소는 바로 이런 점들이 아닐까.
對北문제에 오래 종사했던 한 고위전문가는 남북정책이란게 마치아녀자들의 감정싸움 같다고 했다.긴장과 대립이 지속된 수십년 동안 남북한은 겉으로는 거창하게 민족과 통일을 내세웠지만 내막으론 상대방을 어떻게 골탕먹이고,한방 먹으면 어 떻게 보복하느냐는 것이었다는 고백이었다.서로 말꼬리를 잡고,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파고 들고,실수를 잡아 나꿔채고….그런 것들이 남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저 ××들이 까불어서 한방 먹였지』『저××들 이번에는 골탕 한번 먹였지』라는게 평가의 기준이었다는 것이다.
북한측은 더 말할 게 없다.平壤에 갔을 때 안내원은 그랬다.
『서울은 교통지옥이라면서요.』그는 교통지옥이 되려면 자동차가 너무 많아야 된다는 사실을 그냥 뛰어넘어 버리는 것이다.『차가너무 많아서 그렇지.그런데 북한에서 만들고 있다는 승리차는 어디 있지』이렇게 되물으면 그는『아,지금 여기선 잘 안보여서 그렇지,우리도 많이 있어요』라고 기를 쓰고 대답한다.그저 꿀리기가 싫은 것이다.거기서 중요한 것은 남북문제의 기본틀이 아니라체면과 명분뿐이다.
최근 핵문제를 둘러싼 남북문제,北-美 회담의 뒤안에서도 그런류의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다.한국측은『우리 어깨 너머로 北-美 直去來는 있을 수 없다』며 先남북회담이라는 전제를 요구한다.그러면 북쪽은 그런 조건이면 절대 양보할 수가 없다고 버틴다.핵회담이 지연된다.초조해진 미국은 한국에 압력을 가한다.미국을 가운데 두고 남북의 담당자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결국미국의 압력으로 한국측이 先남북회담 조건에서 후퇴했을 때 북쪽의 對南담당자는 막후에서 씩 웃었 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남측도 가만 있을 수 없다.시베리아 벌목공문제,인권문제를 들고 나온다.북한의 인권문제가 대대적으로 국제문제화되었을 때 이번엔 남측 담당자가 웃었을까.
남북간엔 수없는 제의들이 오갔다.그중 일부에는 그런 상대방 물먹이기 요소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한쪽이 10대 강령을 들고나오면 다른 쪽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론을 들고 나오고,한쪽에서 평화협정을 제의하면 다른 쪽은 不可侵조약으로 맞 서고,離散家族재회의 확대를 요구하면 범민족회의라는 인민혁명전략이나 들고 나오고….진정한 통일이나 남북관계의 정상화보다는 정략적인 의도와정치적인 계산이 더 작용했을 때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렇게되면 양측 주민들의 입장은 항상 고려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게 마련이다.
***양측 民意 따라가야 그러나 이제 정부가 중시해야 할 것은 바로 이처럼 北韓주민들속에 번져가고 있는 변화에 대한 인식을 수용하고 확대시켜 나가는 것일 게다.金泳三정부가 곧 새로운종합통일방안을 내놓는다는 말이 있다.우리는 이제 남북정책에서 頂上회담에 연연해 하거나 단기성과를 얻으려는 정치적인 고려를 넘어 변화의 기류를 호흡하기 시작한 북한주민을 감싸안아들일 수있도록 한 차원 발상을 높일 단계에 왔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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