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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수저라 불리는 전통 놋수저 재현하는 장인 김영락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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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나이가 들수록 우리 조상의 지혜와 숨결이 배있는 방짜수저에애착이 갑니다.
그러나 기력이 날이 갈수록 떨어져 이 기술을 후세에 남겨주고싶은데 배우려고 선뜻 나서는 젊은이들이 없어 안타깝습니다.』우리 식탁에서 이미 오래전에 모습을 감춘 방짜수저라 불리는 전통놋수저를 재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고 집스런 장인金暎洛씨(69).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랑곳 없이 35도를 오르내리는 요즘 강원도 강릉시입암동 단층집 옆칸에 판자를 덧댄 3평크기의 간이 놋갓점에서 화롯불을 피우고 망치를 두드리며 무더운 여름을보내고 있다.한때 수십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놋 갓점을 운영하며 방짜수저를 만들기도 했던 金씨는 이제는 내다 팔기 위해서가아니라 오로지 사라져가는 전통 놋수저를 지키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방짜수저는 주조제품과는 달리 황금빛 윤이 흐르고 기품도 있어 해방전까지만 해도 최고로 쳤는데 요즘 사람들은 방짜라는 말조차 모르고 배우려는 사람도 없어요.』 방짜는 품질이 좋은 놋쇠를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고 깎아 만드는 것으로 놋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만드는 일명 퉁짜놋수저와는 다른 완전 수공예품.
방짜수저는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대신 시중에서 파는퉁짜놋수저와는 달리 황금빛 윤이 흐르고 기품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리 한근에 상납 넉냥닷돈 비율로 도가니에 넣고 숯불화덕에 녹여 길쭉한 모양의 무디판에 부어 식히면 10㎝의 무디가락이 나오는데 이것이 한개의 숟가락이 됩니다.』 무디가락을 숯불에 적당히 달궈 머루돌에 올려놓고 앞뒤로 돌려가며 망치로 내려치면 숟가락 형태가 되는데 이때 불에 너무 달구면 헤지고 너무식히면 깨지게 돼 장인의 실력이 이 과정에서 판가름난다는게 金씨의 설명이다.
金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숟가락에 표면을 깎아내고 갖가지 모양을 조각,완벽한 방짜수저를 만들어 낸다.
金씨의 작품중 수저 끝부분에 연꽃봉오리를 섬세하게 조각한 아이 연봉수저와 대나무마디 모양을 새겨 넣은 죽절수저가 그중 으뜸이다. 『아이 연봉수저는 어려서부터 불심을 갖게 하고 부처님에 수명장수를 기도하며,죽절수저는 대처럼 곧고 바른 마음과 삼강오륜이 나타내는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작품』이라고 金씨는 설명했다.
金씨가 방짜수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성유기와 함께 방짜점으로 유명한 경북봉화군신흥리에서 놋갓점을 운영해온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다.어려서부터 부친과 함께 전국 곳곳을 떠돌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익힌 金씨는 해방후 본격적으로 홍천 과 강릉.양양 등지에서 놋갓점을 운영,한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50년대 후반부터 연탄 사용이 늘며 아황산가스로 놋수저가 변색하고 때마침 스테인리스 제품이 밀려와 놋수저 사용이 줄어들자 방짜수저 만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88년부터 방짜수저의 맥을 이어야겠다는 결심으로 다 시 망치를 들어 6년째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또 방짜수저의 대물림이 끊겨가는 현실 속에서도 막내아들인 金宇燦군(17.강릉농공고3년)이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했다.
金씨는『요즘엔 난방이 가스와 기름으로 바뀌고 세척제가 있어 놋수저가 우리 생활에서 되살아 날 것』이라며『생전에 질.성.미를 고루 갖춘 방짜놋수저를 재현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江陵=洪昌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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