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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속 누드, 예술? 상술? 아리송하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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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상연된 뉴욕 시티 오페라의 쇤베르크 ‘모세와 아론’에서 합창단 여성단원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이집트를 탈출해 사막을 통과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처녀들을 제물로 바치는 대목에서다. 이를 두고 외설이냐 예술이냐 찬반 양론이 뜨겁다.

LA 오페라에서 상연한 ''탄호이저''

오페라에서 누드 장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3년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모리스 베자르가 무대를 현대로 옮긴 베르디의‘라 트라비아타’를 ‘누드 버전’으로 선보였다. 당시 히피 스타일의 장발족이 무대를 누비는 바람에 관객들은 당혹하기도 하면서도 몹시 즐거워했다는 후문이다.

베르디의 오페라‘리골레토’에서도 난봉꾼 만토바 공작의 궁정에서는 그룹 섹스가 판을 친다. 누드 연기자를 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영국 연출가 데이비드 맥비카가 연출을 맡은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베르디‘리골레토’(1985년)는 오퍼스 아르테사가 DVD로 제작해 BBC에서 출시됐다. DVD 포장지 겉면에는 ‘Contains full frontal nudity, male and female’(남성과 여성의 전면 누드 장면이 포함돼 있습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오페라‘라보엠’에서 파리의 다락방에서 함께 지내는 4명의 예술가 중 한 명은 화가다. 마르첼로는 언손을 호호 녹여가며 홍해의 풍경을 그린다. 연출자에 따라서는 이 대목에서 마르첼로가 누드 모델을 그리는 것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막이 오르면 누드 모델이 포즈를 취하는 것은 물론이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4부작 중 ‘라인의 황금’에서 라인강의 여신 3명이 누드로 출연하기도 한다. 2004년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키스 워너가 연출을 맡은 ‘라인의 황금’에서는 라인강의 여신 3명은 거의 누드에 가까운 특수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당시 로열 오페라의 홍보 담당은 “센세이션을 위한 센세이션이 아니다. 이들 세 처녀는 순수와 자연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86년 런던 로열 오페라 극장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살로메’에서 여주인공 역을 맡은 소프라노 마리아 에윙은 ‘일곱 베일의 댄스’를 부르다가 마지막에 옷을 완전히 벗어 던져버렸다.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돈조반니'

2005년 런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에서 상연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영화 감독 앤서니 밍겔라가 연출을 맡았는데 누드 장면 때문에 흥행 성적이 매우 좋았다.

2005년 9월 스위스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에서 상연된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선 남성 포르노 스타가 연기자 중 한 명으로 출연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 에로 배우로 활약 중인 에르베 피에르 귀스타브가 제우스 신이 황소로 변장해 에우로파를 겁탈하는 장면에서 제우스 역을 맡았다.

‘탄호이저’의 ‘누드 버전’은 올 2월 LA 오페라에서도 상연됐다. 티켓에는 ‘청소년 관객은 관람을 삼가해 주십시오. 이 프로덕션에는 누드 장면과 성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Viewer discretion advised: This production contains nudity and strong sexual content)라는 경고 문구가 실렸다.

오페라에서 무조건 여성만 벗기는 것도 아니다. 1991년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상연된 해리슨 버트위슬의 ‘가웨인’에서 남자 가수가 전라로 등장하기도 했다.

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연출을 맡은 피에르 루이지 피치(77)감독은 오페라에 가슴을 노출한 무용수들을 등장시켜 선정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라 트라비아타’‘리날도’‘타이스’ 등에도 어김없이 상반신 누드가 나온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극 중에 반드시 누드를 넣어야겠다는 고정된 생각은 없다. 그러나 미적으로 적합한 장면에서 누드는 이미지에 아름답고 진실한 손길을 더해 준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페라 개막 전부터 누드가 등장한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매표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품은 전체적으로 허술하게 만들어 놓고 단지 누드 하나 만으로 표를 팔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면 관객들은 실망감만 느낄 게 분명하다.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상연된 '돈조반니'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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