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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기말의 역설적 도전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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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獨逸과 같은 나라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21세기를 맞이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상태에서 21세기를 맞이하게 될지는 불확실하기 짝이 없다.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독일이 21세기가 도래하기 훨씬 전에 이미 21세기적 현상을 만끽하고 있다면,우리는 지금 21세기를 맞기위해 世紀末의 逆說的 현상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독일은 통일을 이루기 몇십년 전에「민족의 공존」과「사회평화」를 달성했지만 우리는 이제 脫냉전과 민주화의 시대적 逆說이라 할 수 있는「민족대결」「사회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世紀末的 도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지난 몇달동안 돌출적 사건들에 휘말려 휘청거려온 감이 없지않다.무엇보다 심각한 현상은 개혁을 통한「新韓國」건설계획의 비전과 방향성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文民정부는 개혁을 통해 데모와 파업이 사라진「사회평화」를 달성하고「전향적」인 통일정책을 통해「민족공존」의 기틀을 다질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世紀末의 逆說的 현상인「과거」와「냉전」의 양면 저항에 부닥쳐 맥없이 무너져내리고있다.개혁을 통한「新韓國」의 미래건설이「과거의 재현」을 통한「현재의 구원」으로 후퇴했으며,「민족이익」의 優先化를 통한 남북관계의 평화적 공존 모색은 북한의 核개발이라고 하는 脫냉전시대의 逆說的 저항에 부닥쳐 방향성을 상실해버린듯 하다.
민족 모순의 역설 못지 않게 民主主義의 空洞化에서 제기되는 世紀末의 도전 또한 심각하다.우리에게 문민정부의 등장은 민주주의의 보편화와 國民化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이것은 세계사의 흐름에서 볼때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다.우리에게 도 마침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라고 하는 世紀末의 시대적 의미가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空洞化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개혁과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갈채 속에 權力의 自己禮讚과 自信過剩이 싹터왔으며,권위주의 해체 과정에서 국민적 통합의 제도화가 이루어지기보다는 개별이익 추 구의 집단이기주의가 발호하고 있는 것이다.권력의 자신과잉은「토론의 정치」를 「지시의 정치」로 대체시켜 놓았고,집단이기주의의 발호는「국민적 통합」대신「국민적 분열」을 조장시켜 놓았던 것이다.결국 토론정치의 실종 속에 전개된 민주화 과 정은 국민적 통합과 내면적 결합을 이루기는커녕 地緣이나 學緣등 갖가지「緣」으로 얽힌分派主義 속으로 분해되어갔던 것이다.이러한 과정에서 민주주의의방파제인 다수의 소리없는 중간계층은 조직된 소수의 독주에「할말을 하지 못하고」다만 민 주화에 대한 냉소적 空白意識을 키워나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21세기를 맞기 전에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또하나의 도전은 젊은 世代 내부의 갈등에서 파생되고 있는 世紀末的 逆說로부터의 도전이다.金日成장례식 弔問을 둘러싼 世代間의 반응 차이에서 여실히 나타났듯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에 대한 世代間의인식 차이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世代間의 차이는 한국 현대사의 험난한 전개 과정에서 형성된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世代間의 마찰이라기보다 世代內의 분해 과정에서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X세대」와「主思派」간의 逆說的 만남이다.지난 30여년간의 우리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젊은 世代는 새로운 시대를 향 해 젊음과 지성을 발산시키는 미래지향적 에너지의 源泉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근면과 절약의 倫理觀을 저버린 채 쾌락 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는「X세대」와 국제화의 흐름 속에 아직도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의 첨병이 되고자 하는「主思派」로부터 21세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X세대」와 「主思派」의 양극화 속에서말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중간층 젊은 世代의 윤리적 공백이 확대되고 있다는 현실일 것이다.
***세대격차 시대産物 지금 世紀末을 통과하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분명하다.우리는 지금 개별 이익의 맹목적 추구를 민주적인 것으로 착각하고,「색깔내기」를 사회의 방향성 제시로 혼동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과 언론의 오만으로부터 건전한 중간층을 구해내야 하며 또「X세대」와「主思派」간에 샌드위치가 돼있는 중간층 젊은 세대에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21세기까지 앞으로 7年.꿈이 실현되지 않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체호프의「세자매」 얘기를 전해주고 싶다.
〈서울大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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