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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먹을게 없는 선거밥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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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YS정부에 大邱의 자존심을 보여주자」는게 玄慶子후보를 내세운 신민당측의 선거슬로건이었다.大邱민심의 향방을 추적해온 한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 메시지가 꽤나 설득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識者層에선 좀 달랐다.
「누가 당선되건 대구사람들의 자존심이 충족되진 않을 것이다.
民自黨후보가 되면 우리는 밸도 없나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할 것이고 신민당후보가 되면 고작 감정풀이나 했나 하는 생각에서 또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어차피 먹을 것이 없는 밥상을 받은 것과 같은 선거판이다.」 식자층의 여론은 이렇듯 시니컬한 쪽에속했다고 전했다.이런 大邱 일부 식자층의 느낌이 전체 大邱정서를 얼마나 대변하는지는 알수 없으나 최근의 선거가 갈수록「먹을것없는 밥상」처럼 시들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새 선거법이 돈을 꽁꽁 묶어놓았기 때문은 아니다.돈은 묶었지만 말은 풀었다니 나름대로의「말의 盛饌」이라도 있어야 할텐데 오히려 말의 내용은 더 가난해졌다.게다가 돈이 묶여 조직이 얼어붙고 정책 대결의 능력은 없으니 새롭게 불거지기 시작한건 緣줄 캐기다.종친회.향우회.동창회등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돈선거가 사라진건 좋지만 다가오는 선거는 地緣.學緣.血緣이맹위를 떨치는 선거판이 될까 벌써부터 걱정된다.
이는 결국 政黨이 아니라 朋黨일 뿐인 중앙정치의 투영일 것이다.말거리가 왜 없겠는가.최근의 정치적 이슈만해도 南北.노사.
학원.가뭄.土超稅문제등 굵직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몇개의 지역 보궐선거라해도 그 기회를 활용해 국민의관심을 국가적 문제에 끌어모으고 그에 대한 자신들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게 중앙정치의 책무다.그래야 지역선거의 질도 높아진다. 그러나 중앙정치부터가 그런데는 애당초 능력 부족이다.民自黨은 헌법재판소가 土超稅에 대해「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린 직후에는지당한 결정이라며 土超稅 폐지에 열을 올리더니 金泳三대통령의 지시가 그 골격을 유지하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지자 하루아침에 폐지하지는 않는 쪽으로 黨論을 바꿔버렸다.지시만 있을뿐 당론은아예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그런가하면 토지공개념을 정부이상으로역설했던 民主黨도 憲裁결정이 나자마자 즉각 찬성성명을 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도무지 앞뒤 가 맞지 않는다.
도입될 때 그토록 찬반이 요란했던 문제라면 그 폐지 여부에도적어도 그에 버금가게는 요란해야 이치에 맞는다.그러나 여당도,야당도 입을 싹 씻고 있다.
정당의 모습이 이러할 때 국민의 脫정당화현상은 가속될 것이다.새 선거법이 요구하고 있는 중심적 선거운동은 자원봉사자의 활용이다. 그러나 이런 선거운동방법이야말로 풀뿌리정치.참여정치의풍토가 마련되어야 활성화할 수 있다.정당의 무기력과 무능.무성격으로 국민이 갈수록 정당에 무관심해진다면 어떻게 자원봉사자를끌어모을 것인가.현재대로라면 새 선거법도 모래위의 궁 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밥상의 어느 음식에도 젓가락을 댈 흥미를 느끼지 않는 脫정당국민들이 늘어나면 정치도,선거도 쇼나 연극으로 전락하는건 다른나라에서도 나타난바 있는 현상이다.쇼나 연극이 관객을 많이 모으느냐 아니냐는 작품의 질보다는 극적 흥행요소가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되는 법이다.마찬가지로 脫정당화 현상속에서의 선거도 흥미거리가 있느냐 없느냐로 그 열기가 좌우된다.그 결과 배우가 출마한다든지 개인적 감정을 가진 후보끼리의 경쟁이든지하는 흥미거리가 있을 때는 선거에 대한 관심 도 높고 투표율도 높아졌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그 반대가 된다.
***自願봉사 신명 안나 이런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당연히 결과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실종일 수밖에 없다.비단 이번 補選에서뿐 아니라 지난번 地自制선거,그뒤의 補選등 일련의 선거에서 그런 조짐이 이미 엿보였다.이번 補選결과를 놓고 웃고 울것이 아니라 정당들 이 진실로 심사숙고해야 할것은 이같은 선거의 쇼化현상일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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