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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일본은 부라사가리 … 한국은 대못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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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신문협회가 며칠 전 도쿄의 중앙일보 일본지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정부에서 기자실을 폐쇄한다는데 언제 어떻게 시행되느냐고 물었다.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기자들을 관청에서 내쫓고, 공무원 인터뷰를 까다롭게 만드는 것은 일본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12일 드디어 한국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정부의 언론 탄압 정책이 얼마나 비난 받을 일인지는 일본의 보도 시스템과 비교해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선진국 중에서 일본의 언론은 정부 비판.감시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일본 총리는 하루 두 번 언론과 '부라사가리' 브리핑을 실시한다. 총리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서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온갖 국정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다. 점심 시간 직전에 한 번, 오후 일과가 끝날 때 한 번 실시한다. '매달려 있다'는 뜻인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는 기자들이 마치 총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서 매달리듯 밀착 취재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취재된 총리의 발언은 즉시 전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을 통해 1억2700여만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도된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요즘도 민감하고 직설적인 질문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답변한다. 한국처럼 대통령이 주의.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는 인터뷰나 보도는 없다.

장.차관급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에선 수개월, 반 년이 넘도록 언론 브리핑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장관이 적지 않다. '(정부에서)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고 언론을 적대시하는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승인을 받고,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국회와 관청 주변에서 장관이 기자들과 마주치면 으레 즉석에서 현안에 대해 질문을 받고 소상하게 구상을 밝힌다. 개별 언론의 별도 인터뷰도 물론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에게 국정을 '보고'하는 마당에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즉석 '부라사가리' 인터뷰가 빈번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장관 이름은 물론 정책 방향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 장관의 이름조차 잘 모르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국민에게 알리고 견제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언론 민주주의'가 일본을 강한 나라로 만든 원천이다.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을 기피하면 정부와 국민 간의 언로(言路)가 막히고, 국민의 눈과 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동호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