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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LA 할리우드 보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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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보울을 처음 방문했던 2005년 7월 4일. 그날은 마침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매년 7월 2∼4일은 으레 피날레 음악으로 수자의 행진곡‘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연주하면서 불꽃놀이 축제를 벌인다. 할리우드 보울의 불꽃놀이는 여름철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여름 시즌의 폐막 공연에서 연주되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에서도 불꽃놀이로 대포를 대신한다.

LA 도심에서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할리우드 보울(Hollywood Bowl)은 미국 최대 규모의 천혜의 야외극장이다. 이곳에서 불꽃놀이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69년부터다. 당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총감독 어네스트 플레이셔만이 불꽃놀이를 제안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름 내내 거의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 때문에 야외 음악회하기엔 적격이지만 불꽃놀이 할 때는 주최측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산꼭대기에‘HOLLYWOOD’라는 유명한 입간판이 서있는 건너편 산자락에 불꽃이라도 튀어 산불로 번지면 큰 일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 전 1시간 전부터 스프링쿨러로 물을 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얼마나 건조한가 하면 지금은 비싼 박스석으로 바뀌었지만 1953년부터 72년까지는 무대 바로 앞에 연못이 있었다. 습도도 조절할 겸 록 콘서트에서는 흥분한 관객이 무대 위로 뛰어드는 것도 방지할 겸 해서 만든 것이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무지개 쇼를 연출해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여름 시즌 할리우드 보울의 공연 개막 시간은 오후 8시 30분. 사방이 어두워지려면 9시가 훨씬 넘어야 한다. 공연 1∼2시간 전부터 서둘러 도착한 관객들은 가족이나 친구끼리 모여서 캘리포니아산 화이트 와인이나 맥주에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나눠 먹는다. 프리 콘서트 피크닉은 할리우드 보울의 오랜 전통이다. 객석 입구에는 풀 서비스가 가능한 고급 레스토랑도 있고 미처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관객을 위한 테이크 아웃 식당도 있다. 전화로 미리 주문하면 박스석까지 배달도 해준다. 편히 드러누울 수 있는 잔디석은 없지만 객석으로 음식물 반입이 가능해 야외공연의 즐거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4∼6명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와인을 곁들인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박스석이 가장 비싸다. 박스석은 가족이나 회사 동료들이 정기 회원으로 예약하는데, 대부분이 매년 갱신하기 때문에 박스석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 다음 등급은 운동 경기장 스타일의 플라스틱 의자가 있다. 양쪽 팔걸이에 컵받침대까지 딸려 있다. 가장 싼 자리는 벤치석이다. 입장권은 좌석 위치에 따라 1달러에서 100달러까지 다양하다.

1952년까지만 해도 객석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피크닉은 금지됐었다. 나중엔 도로시 챈들러의 주장으로 오히려 장려되었다. 피크닉 바구니 경연대회까지 열렸다. 충분한 주차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주차장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때문에 연주 도중에 차를 빼내기가 어렵다.

할리우드 보울에서 야외 음악회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22년 7월 11일. LA 시민들은 볼튼 캐년의 언덕에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 알프레드 허치가 지휘하는 LA 필하모닉의 연주를 들었다. 당시 입장료는 25센트. 할리우드 보울의 상징인 ‘밴드 셸’(Band Shell. 조개껍질을 엎어 놓은 듯한 모양의 무대)은 1929년에 처음 등장했다. (LA의 여름엔 거의 비가 오지 않긴 하지만) 비를 막아주고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모아서 객석쪽으로 전달해주기 위한 장치다. 풍싱밍과 크레이그 호제트가 디자인한 현재의 밴드 셸은 2004년 여름 시즌부터 교체된 것이다. 새 무대를 만드는 데 무려 2400만 달러의 예산이 들었다. 그 전에는 1927년 건축가 로이드 라이트가 피라미드식 셸을 만들기도 했고 이듬해 다시 아치 형의 셸을 목재로 만들었다. 1980년대부터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유리 섬유 셸을 2003년까지 사용해왔다. 내구성은 강했지만 음향은 형편 없었다. 무대 위에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서로 남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2004년 새로 선보인 밴드 셸에는 마이크와 조명 장치는 기본이고 비디오 카메라 2대가 붙박이로 장착돼 무대 정면 박스석에 있는 수동 카메라와 함께 무대 위의 모습을 잡아내 무대 좌우 양쪽의 대형 화면 2개에 생생하게 전달한다. 지휘자의 정면 표정에다 독주를 맡은 연주자의 모습까지 생중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도 무대에서 내는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적어도 무대 리허설 때는 확성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무대 규모도 훨씬 넓어졌다. 전에는 비바람이 부는 날에는 비싼 악기들이 망가지기도 했다. 무대 뒤에는 탈의실을 갖춘 백스테이지가 실내 공연장 못지 않는 시설을 자랑한다. 철제 빔의 무게만 482t이나 된다. 옛날 무대를 문화재 차원에서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아 법정 소송까지 비화되기도 했지만 새 것으로 교체하기로 결말이 났다.

할리우드 보울은 캘리포니아 해변, 바비큐, 다저스, 디즈니랜드와 더불어 남캘리포니아 여름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비 때문에 연기된 공연은 지금껏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야외음악회를 하기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음악회가 없는 계절에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 무휴 공원으로 개방된다. 1920년부터는 이웃에 있는 할리우드 고등학교가 이곳에서 매년 졸업식을 열고 있다. 5월에는 ‘할리우드의 맛’페스티벌, 6월에는 ‘아트 페어’도 열린다.

경사가 급한 언덕에 있기 때문에 1962년부터 고무 컨베이어 벨트로 움직이는 야외 에스컬레이터 2대가 객석 중앙까지 운행 중이다. 1시간에 8000명을 태울 수 있다. 객석수 17,680석. 7월부터 9월까지 여름 시즌에는 매주 화, 목, 금요일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무대 리허설을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 향기와 화이트 와인의 향이 뒤섞인 가운데 노을이 붉게 물들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해가 지면 여름에도 꽤 쌀쌀해서 스웨터를 가져가야 할 정도다. 오후 4시30분 이전에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저녁 공연이 있을 때는 인근 지역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무료 셔틀 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파크 앤 라이드 서비스다.

매표소 아래쪽에는 할리우드 보울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할리우드 보울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1984년에 개관했다.

LA 필하모닉은 여름이 되면 도심의 디즈니 콘서트홀을 떠나 이곳 할리우드 보울에 자리잡는다. 할리우드 보울은 클래식과 팝, 뮤지컬과 재즈가 만나는 곳이다. 지금까지 프랭크 시나트라, 루치아노 파바로티,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야사 하이페츠, 비틀스, 사이먼과 가펑클, 엘튼 존, 카라얀, 번스타인, 클렘페러, 줄리니, 래틀, 살로넨, 브렌델, 장영주, 장한나 등 거장들이 무대에 섰다. 비틀스는 1964년 8월 23일 록큰롤 밴드로는 최초로 이곳 무대에 섰다. 1991년부터는 가벼운 클래식과 영화음악을 연주하는 할리우드 보울 오케스트라를 두번째 상주 악단으로 맞아들였다.

사상 최다 유료 관객 동원 기록은 1936년 8월 7일 프랑스 태생의 미국 소프라노 릴리 폰스(1898∼1976)의 무대. 26,410명이 운집했다. 당시 객석수는 20,000석이었으니까 입석까지 발행됐다는 얘기다.
출입구 앞에 있는 조각상‘뮤즈신’은 1940년에 만들어진 조지 스탠리의 작품이다. 제작비만 10만 달러가 들었다. 스탠리는 오스카상 트로피로 유명한 조각가다. ‘음악의 뮤즈신’ ‘연극의 뮤즈신’ ‘무용의 뮤즈신’등 3개로 되어 있다.

1950년대에는 오페라와 발레도 공연했지만 요즘은 오케스트라 위주의 콘서트나 팝 가수들의 공연이 많다. 1956년 여성 재즈 보컬 엘라 피츠 제랄드와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의 합동 무대 실황은 2장짜리 ‘재즈 앳 더 할리우드 보울’(Verve)로 출시되기도 했다.

할리우드 보울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도 많다. ‘스타 탄생’(1920년) 이 그렇고 ‘1812년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캐서린 햅번이 직접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올리 올리 옥슨 프리’(1978년)도 유명하다. 베트 미들러 주연의 ‘Beaches’, 프랭크 시나트라와 진 케리가 주연한 ‘Anchors Aweigh’(1945년)도 있다.

◆공식 명칭: Hollywood Bowl
◆개관: 1922년 7월 11일
◆객석수: 1만 8000석
◆주소: Hollywood, 2301 North Highland Avenue
◆홈페이지: www.hollywoodbowl.org
◆건축가: Hsing-Ming Fung and Craig Hodgetts
◆부대 시설: 할리우드 보울 박물관(1984년 개관)
◆상주단체: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할리우드 보울 오케스트라
◆로케: ‘스타 탄생’(1920년) ‘올리 올리 옥슨 프리’(1978년)‘앵커스 어웨이’(1945년)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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