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사건’의 추억 미스터리 없는 세상을 꿈꾸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호 02면

화성 연쇄살인을 토대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화성사건보다 더 ‘영화’스러운 사건이 있는데….”

20년 전인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군에서 벌어진 ‘오대양 집단변사 사건’이 그것입니다.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천년왕국을 꿈꿔온 오대양교의 교주와 그 신도 등 32명이 집단 변사체로 발견된 엽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던 공예품 공장의 좁은 다락방에서 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됐습니다. 시신들은 자살·타살을 가리기 어렵게 훼손돼 있었고, 사교의 배후에 권력층이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습니다. 하지만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91년 느닷없이 신도 6명이 경찰에 집단 자수해 왔습니다. 용인 집단변사 사건과 별개로, 자신들이 다른 신도를 암매장했다고 고백한 겁니다. 이를 계기로 집단변사 사건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경찰기자였던 저는 용인 현장에 머물며 어떻게든 미스터리를 풀어보려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살해돼 공장으로 실려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취재를 했습니다. 용인 현장에서 수십㎞ 떨어진 곳에 오대양농장이 있었습니다. 몇 가지 가설을 세워놓고 용인 현장과 농장을 오가며 이를 증명해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유일하게 제가 한 일이라고는 법의학자 사이를 갈라놓은 겁니다. 목에 난 흔적이나 이화학검사 결과를 토대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살’로 결론 낸 분들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열띤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추억’을 더듬으며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당시에 지금의 과학수사 능력이 있었다면 오대양의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을까’.

스페셜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뿌듯하게 느낀 점이 있습니다. 우리 과학수사의 장비나 기법이 여러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검찰의 마약수사, 경찰의 사이버수사, 군의 총기감식 등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사환경은 아쉽게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취재를 통해 군의 과학수사 실태가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됩니다.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의 김재훈 소장께 감사드립니다. 한 원로 법의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법의학은 인권을 치료하는 학문”이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검찰·경찰의 ‘인권 치료사’들에게 성원을 보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