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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고이치 일본 자민당 前 간사장 특별대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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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2면

양영석 인턴기자

박=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日, 北·美 흐름 외면 납치문제 고집 땐 외교 쇼크 받을 것”

대담=박철희 서울대 교수

가토=동북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큰 발걸음이다.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6자회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한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타개하지 않고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는 나라인 만큼 노무현 정부가 결단을 내려 북한에 손을 내민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은 일본의 200분의 1, 한국의 40분의 1이다. 군사대국으로 보여도 미·일 측에서 보면 점차 전투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도 일본도 손을 댈 수 없는 핵을 외교 카드로 선택하고 있지만, 이를 제외하면 북한에 위협을 느낄 필요는 거의 없다고 본다. 김정일 정권을 국제정치의 원칙적인 파트너로 끌어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위한 3자(남북,미) 또는 4자(남북,미·중) 간 정상회담의 절차가 시작됐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출발점인 이 선언은 동아시
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

가토=한국전쟁의 종결은 6자회담에서 논의해 왔고, 이번 회담을 계기로 보다 현실적인 것이 됐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목표로 한다면 한국전쟁 종결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박=그동안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대북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전략적 외교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들이다. 후쿠다 내각은 납치문제에 보다 유연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가토=그러한 지적은 바로 내가 우려하는 바였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6자회담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은 북·미 관계 타결을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남기려는 결심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 6자회담이라는 큰 흐름을 타지 않고,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한의 테러국가 지정 해제에 찬성하지 않겠다는 ‘브레이크 외교’를 해온 것은 판단 미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납치문제를 놓고 일본에 많은 배려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이해보다는 자국의 이익, 대통령의 명예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본이 (1970년대 초) 미·중 관계의 좋아진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닉슨 쇼크(닉슨 미 대통령의 방중)를 받았던 것처럼 다시 한반도 문제로 외교적 쇼크를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해 왔다. 후쿠다 정권은 납치문제와 함께 비핵화 문제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지금과는 다르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박=고이즈미·아베 내각은 아시아 외교전략이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시아를 경시했고, 한·일 관계도 좋지 않았다. 후쿠다 정권에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가토=고이즈미 정권 후반과 아베 정권에서는 한·일, 중·일 관계는 마음으로부터의 신뢰관계가 아니었다. 이것은 1900년 전후 일본과 한반도, 일본과 중국의 역사에 관한 기본 인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이 동북아 사람들에게 잘못했다는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하는데 이에 관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다로 전 외상은 공통의 가치관을 가지는 외교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냉전시대의 반공정책을 모방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후쿠다 정권에서는 완전히 수정될 것으로 본다. 절대로 후쿠다 총리는 가치관 외교를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도, 중국도 후쿠다 총리와 대화하기 쉬운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한 노무현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의 통화는 아베 정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단지 한 통의 전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통화할 수 있는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박=한·일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인데 후쿠다 내각에서 진전이 있겠는가.

가토=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자국의 쌀을 지켜야 한다. 현재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의 농업정책에 대한 이해를 얻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자민당은 농업정책이 농촌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바람에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서 (전통적 표밭인) 농촌에서 참패했다. 한·일 관계에서 (FTA 체결의 쟁점인 농업문제를 놓고) 큰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어려울 듯하다.

박=후쿠다 총리는 개인적으로 중·일 관계에 큰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중국 인맥도 두텁다.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가토=아베 전 총리와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관계는 일정 수준 진전됐지만 마음으로부터의 사귐은 되지 못했다. 지난해 아베 전 총리가 돌연 방중한 뒤에도 중국의 외교지도자들은 내가 방중할 때마다 “아베 총리가 다시 야스쿠니에 가지는 않겠지요”라는 질문을 던져서 ‘아, 아직 안심하지 않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후쿠다 총리는 그런 걱정을 불식시킬 것이다. 야스쿠니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가장 힘든 장애물은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박= 후쿠다 총리는 어떤 사람인가.

가토=균형감각을 가진 차분한 사람이다. 화려한 면이 없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정치를 드라마화한 고이즈미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아베 정치보다 더 합리적이고 안심할 수 있는 정치를 추구하고 있고, 이것이 후쿠다 총리의 선출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박=앞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할 계획은.

가토=2000년 ‘가토 정국’(모리 내각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으로 어떤 의미에서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기 때문에 그 상처는 아직 남아 있다. 앞으로도 의욕적으로 열심히 일하겠지만 지금은 어쨌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싶다. 지금까지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6년간 당 집행부에 대한 비난 세력으로서 발언해 왔기 때문에 그만큼 상처도 받았다. 이번에는 스스로 참가해서 만든 후쿠다 정권을 위해 좀 더 밝은 마음으로 정치활동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자민당이 계속 집권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가토=자유를 추구하는 리버럴리즘(자유주의),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리버럴리즘,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리버럴리즘이 일본의 장래 방향이며 아시아 국가들을 위한 공통의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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