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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이야기] 미술시장 휘어잡는 금융의 힘

중앙일보

입력

포브스코리아

▶앤디 워홀의 <청록 마릴린>

국내외 미술 시장에 금융의 힘이 가세하면서 성장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컬렉터인 쉬타인하르트는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사람들이 미술시장에서도 발등을 찍힐 수 있다며 우려한다.


요즘 미술시장은 천장이 없어 보인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도 그렇다. 국내에서도 최근 1년 사이 몸값이 5~10배 이상 오른 작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젊은 작가 중에서도 그림 한 점에 1억원대를 호가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은 물론 지방에도 경매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두 개 밖에 없던 경매회사가 연말쯤에는 10여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미술시장 호황의 동력은 물론 돈이다. 미술이 금융과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다.

미술품의 투자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학문적으로 검증되면서 기관들이 투자에 나섰다. 이와 더불어 미술품을 대상으로 하는 간접투자 자산인 아트펀드가 각광받고 있다. 주식시장의 큰손들이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속속 미술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식시장의 큰손이 한 경매회사의 대주주가 돼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이나 증권회사의 펀드 매니저들이 본격적으로 그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재스퍼 존스의 <잘못된 출발>

지난 9월에 세계적인 미술 잡지인 <아트뉴스>(ARTnews)가 발표한 ‘세계 200대 컬렉터’를 보면 이것이 세계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상위 10위 중 절반이 스티븐 코언(Steven Cohen), 케네스 그리핀(Kenneth Griffin) 같은 증권 관련 인사들이다. 요즘 세계 미술 시장의 가장 큰손은 헤지펀드계의 거물들이다. 이들은 가장 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으로 고도의 금융 기법과 신출귀몰하는 기동성으로 주식시장에서 돈을 긁어 모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최근 들어 미술시장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이들의 눈에 미술시장은 노천광이나 다름없다. 곡괭이와 바구니를 들고 와서 긁어 담기만 하면 된다. 미술시장은 금융시장처럼 정교한 시장이 아니다. 미술인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고 미술시장에는 금융시장처럼 복잡한 규제나 정부의 감시나 감독기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모든 시장 참여자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이들에게 미술시장에서 돈을 버는 일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

이들 중 일인자는 SAC 캐피털(SAC Capital) 매니저이자 오너인 스티븐 코언이다. 그는 지난해에만 9억 달러를 벌었다. 그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미술품에 투자해 왔으며 지금까지 사들인 미술품은 6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거액의 그림 거래에 단골로 등장한다. 최근에는 앤디 워홀의 <청록 마릴린>(Turquoise Marilyn)을 8,000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워홀 작품 중 최고가다. 지난해에는 윌럼 드 쿠닝의 작품을 1억3,750만 달러에 사들였다. 역사적으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잭슨 폴록의 1억4,000만 달러 다음으로 비싸게 거래된 기록이다.

▶1 미국의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와 에디 부부
2 미국 헤지펀드의 거물 스티븐 코언
3 미국의 헤지펀드 회사 시타델의 회장 케네스 그리핀과 앤 부부
4 KKR의 헨리 크래비스와 마리 부부
5 에스티 로더의 로널드 로더와 조 캐롤 로더 부녀
6 이스라엘의 해운 재벌 새미 오퍼
7 프랑스 프랭탕 그룹의 오너 프랑수아 피노
8 대나허 그룹의 대표 미첼 레일스
9 영국의 대형 컬렉터이자 사치 갤러리 대표인 찰스 사치
10 찰스슈왑의 CEO 찰스 슈왑과 헬렌 부부

펀드 매니저인 케네스 그리핀은 2004년 이후 줄곧 1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제 겨우 37세로 24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억만장자다. 그는 지난해 10월에 드림웍스의 공동설립자이자 유명한 컬렉터인 데이비드 게펜으로부터 재스퍼 존스의 <잘못된 출발>(False Start)을 8,000만 달러에 사들여 화제가 됐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컬렉터의 원조는 미하엘 쉬타인하르트(Michael Steinhardt · 66)다. 헤지펀드의 선구자인 그는 90년대 말에 은퇴할 당시 5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거부였다. 그는 재산 중 1억5,000만 달러는 은퇴 후 자선단체에 기부했으며 과거 20여 년 동안 모은 미술품 구입에 2억 달러 정도를 썼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조지 소로스에 필적할 만한 전설적인 인물로 US 에어웨이스 그룹(US Airways Group Inc.)의 인수를 놓고 워런 버핏과 경쟁한 일도 있다. 뉴욕주립대는 그가 기부한 돈으로 쉬타인하르트 과정을 설립했으며, 메트로폴리탄은 그의 이름을 딴 기원전 6세기 그리스 미술관을 만들었다.

주식 투자의 귀재로 40대에 이미 재벌이 된 쉬타인하르트. 은퇴 후에 미술품 투자로도 최고의 수익을 내고 있는 그가 요즘 미술시장에 대해서 조심스런 진단을 하고 있다.

▶세계의 컬렉터 200명을 특집 기사로 다룬 2007년 <아트뉴스> 여름호.

“미술품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7년 전에 내가 200만 달러에 구입한 폴록의 작품이 지금은 2,000만 달러가 넘는다. 45년 전에 250달러에 팔린 워홀의 <레몬 마릴린>은 지난 5월 크리스티에서 2,800만 달러에 거래됐다. 10만 배 이상 오른 것이다. 특히 현대미술(컨템퍼러리) 쪽이 폭등하고 있다.

소더비에 의하면 올해도 컨템퍼러리 작품 한 점의 평균 가격이 71만5,144달러였다고 하는데 이는 98년에 비해 5배쯤 비싸진 것이다. 자산 가치는 급격하게 오르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미술시장이 언제 조정을 받을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위험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술시장은 주식이나 부동산시장과도 연관이 있다.

헤지펀드들이 미술품에 투자하는 예가 그렇다. 따라서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미술품을 투자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미술시장을 주식이나 부동산시장처럼 ‘시장’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웠다. 최근 갑자기 미술시장이 붐을 일으키고 있는데, 90년의 거품 붕괴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는 오히려 오랜 침체기에 빠져있는 고미술품 쪽에 더 관심이 많다.”

다수의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미래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다. 그러나 금융과 미술 쪽에 모두 정통하고 양쪽에서 투자자로서 대성공을 거둔 쉬타인하르트의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90년과 비교하면 미술시장이 구조적으로 건실하고 저변이 빠른 속도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거품 붕괴 같은 사태의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조정 국면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글 김순응 K옥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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