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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를찾아서>5.서양미술사-곰브리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곰브리치의『서양미술사』는 흔히 이야기하는 名著는 아니다.명저라고 하면 우리는 통상 해당 전공영역의 핵심 논점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의 빛을 부여하거나 혹은 그간에는 문제로 제기되지도 않았던 것을 논점으로 제기해 이전까지의 해석방식을 뒤엎는 책을떠올리곤 한다.하지만 이『서양미술사』의 경우는 원래의 제목이 그야말로 소박한『미술이야기(The Story of Art)』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그와같은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이 책은 곰브리치 자신에 따르면 미술이 라는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나라에 첫발을 내딛고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입문서일 뿐이다.
하지만「명저」라는 것을 어떤 책이 독자들을 일깨워 그들을 진정한 자기확장의 경험으로 이끄는 영향력 내지 설득력에 따라 평가하는 것이라면 이 책이야말로 그러한 명저의 계열에 속한다.
원시시대 미술에서 시작해 20세기까지 방대한 양의 미술을 소개하는 이 책에서 곰브리치는 흔히 학자들이 빠져들곤 하는 자기과시의 욕망에 한 순간도 빠져들지 않는다.그는 불필요한 전문용어를 가능한 한 최대한 배제할 뿐 아니라 철저히 도판을 활용한구체적 예증을 들어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는 결코 이 입문서를 읽고 암기해야 하는,그래서 결국에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싫어하고 등을 돌리게 만드는 교과서 같이 기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들을 말과 그림이 어울려 빚어내는 흥미진진한 미술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
『서양미술사』는 모두 2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을 중심으로 시대 순으로,양식변천에 따라 이루어진 이러한분류 역시 도식적이지 않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방대한 양의 역사서술을 요약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책 서술의 특징 몇가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내용소개를대신하기로 한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는 미술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대해 비판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미술에 보다 열린 자세를 취하게 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 책의 본문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사실상 미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미술이라는 단어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는 A라는 대문자로 시작되는「Ar t」라는것이 오늘날 일종의 도깨비나 物神 같은 것이 되어 버렸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밖에도 과거의 미술품이라는 것들이 일정한 기능을 가진 것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든가,미술사가 기술된 숙련도의 진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념과 필요의 변화에 대한 것이라는 등의 지적을 덧붙인다.
즉 그는 미술사가 단순히 자율적인 양식의 연속체 같은 것으로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시대마다 미술적 형상이 자신들에게 제기되었던 과제를 새로 풀어나간 역사임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각 장의 서술에서 곰브리치가 가장 중점을 두는 문제는당대의 작품들을 낳은 시대적.역사적인 배경이며,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예술가들이 어떠한 목표를 노렸는가 하는점이다.그리하여 예를들면 이집트 미술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이집트 미술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벽함을 제일의 목표로 삼은 예술이라는 것을 지적한다.그리고는 이러한 완벽함의 추구가 어떻게 한 사람의 왕의 일생 동안에 불가사의의 하나로 평가되는 거대한 돌의 산을 쌓게했던 철저하 게 조직된 땅의 삶과 연관되는지를 설명한다.또한 이러한 추구가 동시에 통상 정면성의 원리로대변되는 이집트 미술의 양식적 특징들에서 구현되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19세기 미술의 경우에도 당시의 시대배경과 미술가들의사회적 지위변화,그에 따른 안정감 상실을 작가들의 개성적인 양식추구, 예를들면 들라크루아의 낭만적 주제 선택이나 새로운 방식의 색사용문제와 요령있게 연결시켜 설명한다.
또 하나 서술의 특징은 그가 끊임없이 우리들을 그 작업이 이루어졌던 당시 사람들이 경험했던 그 느낌으로 유도하려 한다는 것이다.그는 우리들에게 상투적인 미사여구나 흔해 빠진 경구 같은 것에 물들지 않은 눈으로 작품을 대하도록 자신 의 서술을 운용하며,그리하여 당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대했던 방식에 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고려한다.
예를들어 그는 피디아스의 조각이 그리스 당시에는 하나의 神像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리스인들이 그러한 신상으로부터 느꼈을경외감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또한 중세의 교회미술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성스럽고 기적적인 일이 바로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듯 보이도록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지를 이야기한다. 이영옥〈미술평론가.전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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