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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영광의 빛에 가려진 노벨상의 오류를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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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벨상 스캔들
하인리히 찬클 지음,
박규호 옮김,
랜덤하우스,
380쪽, 1만5000원

누가 뭐래도 노벨상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다. 노벨상 수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의 영광이 되고, 그래서 매년 수상자 발표 순간마다 전세계는 긴장한다. 독일의 과학전문 작가가 쓴 이 책은 그 영예로운 상, 노벨상 이면의 논란과 오류를 담은 책이다.

‘그가 과연 노벨상 수상자의 자격이 있는가’는 가장 흔히 제기되는 논란거리다.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해 191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프리츠 하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가스전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잔인한 가스전의 주도 인물이었다. 1915년 그는 염소가스가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는 상황을 직접 진두지휘 했다. 독일군과 대치하고 있던 영국군 병사 5000여 명은 ‘하버식 취주법’이라고 불리는 염소가스 공격을 당해 고통스럽게 질식사했다. 하버의 아내는 남편에게 독가스 개발을 멈출 것을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지만, 하버의 마음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가스로 사망한 병사 수는 대략 10만 명에 달했다.

노벨상 수상의 근거가 된 업적이 훗날 ‘오류’로 판명 나기도 했다. 덴마크 병리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는 기생충이 생쥐에게 위암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발견해 192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이는 다른 과학자들의 반복 실험에서 계속 실패를 거뒀다. 오늘날 학자들은 피비게르가 유발시켰던 혹이 진짜 위암 종양이 아니었으며, 그 속에 있던 기생충들도 그 혹의 직접적인 발생인자가 아니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시대적인 상황이 노벨상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준 경우도 있다. 영국의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노벨상 수상자다. 그런데 의외로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을 받았다. 이 책의 저자는 “노벨위원회가 이 위대한 정치가에게 기어코 노벨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인도의 민족운동가 마하트마 간디는 끝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노르웨이가 당시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영국과의 마찰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책은 무려 50가지의 ‘스캔들’을 들춰냈지만, 노벨상의 위상에 큰 흠집을 내지는 않았다. 그 내막에 인간적인 실수와 한계는 있었을지언정 악의적인 부정부패는 없었기 때문이다. 스캔들의 사례로 지목된 1949년 노벨의학상 수상자 에가스 모니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모니스는 정신질환자의 뇌 일부분을 잘라내 증상을 호전시키는 ‘백질절제술’을 발명해 노벨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수술을 받은 상당수 환자들은 조용하고 온순하고 순종적으로 바뀌는 동시에 지능이 떨어지고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존재가 돼 버렸다.

오늘날 이 무시무시한 뇌 절제술은 더 이상 시행되지 않는다. 당연히 노벨재단에는 부적격자에게 상을 줬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98년 노벨재단은 공식입장을 발표한다. “당시까지는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정신질환자는 수십 년 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40년대 미국의 공공의료기관의 입원실 절반이 정신질환자로 채워졌다. 그런데 모니스의 수술을 받은 환자는 퇴원해도 가족들이 충분히 돌볼 수 있게 됐다. 또 모니스가 개발한 뇌동맥 검진법은 정신질환의 외과 치료의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해명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사실 노벨상을 둘러싼 논란은 이미 100여 년 전에 그 씨앗이 잉태된, 예고된 부작용일수도 있다.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장에 남긴 수상자의 조건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니, 그 모호한 지시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데 잡음이 없다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느냐 말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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