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어떤 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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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아직도 미해결인채 계속되고 있는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 폭염을 가르고 본의 아니게 피서를 간다는 것 자체가 분에 넘칠 뿐더러 양심에 가책까지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주말의 여행을 말함인데 피서를 간 것이 아니지만결과적으로 피서가 되어버린 「전국 문인모임」에 참석한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몇몇 동료들은 식사후 으레 무더운 날씨 이야기와 두고 온 식구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평소 전혀 그러리라 생각지 못한 당찬 한 여성시인은 집에 두고 온 남매에 대해 걱정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밥은 제 때 챙겨 먹는지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야하는 자녀가 늦잠을 자느라 등교가 늦지나 않는지 하고 말이다.나도 잠시 잊고 있던 아직 미성년으로만 보이는 다 큰 아이들이 떠오르고 폭염속에서 허우적거릴 모습이 눈에 밟히곤 했다.
요즘 누구 하나 마음속으로 기우제의 제주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만 폭염을 잠깐 차단한 잘 된 냉방을 만끽하며 사방 초록색 축제일뿐인 깊숙한 산세에 취해 염치를 잃게도 되는 것이었다.
짜여진 순서에 따라 이리 몰리고 저리 휩싸이다 보면 시간은 저절로 흐르고 다만 남는 것은 오랜만에 대량으로 만난 얼굴들에대한 기억을 하나 더 쌓는다는 것 뿐이다.
저녁에 도착한 서울은 여전히 찜통 그 자체였다.2박3일 동안그야말로 잠깐 피해있었던 것일뿐 모든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38도가 넘는 서울의 북쪽에 위치한 작은 내 거처,그현관 벽에 눈에 익숙한 외등이 빨갛게 켜져 있었다.
『엄마,약수물 길어 놨어요.』 『엄마 이렇게 빨래 해 놨어요,엄마,엄마 서랍 정돈해 놨어요, 전화온거 여기 모두 메모해 놨어요.』 쫑알거리며 턱밑에서 끝없이 지껄이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해결안난 폭염속으로 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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