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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진화한 '인문학 토론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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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본지 2006년 1월 5일자 15면에 보도된 인디고 서원 기사(左). 당시 42.9㎡(13평)의 조그만 서원에서 지금은 회원 400명에 세계적 석학인 브라이언 파머 교수.를 초청하는 등 토론회 내용도 크게 진화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10일 오후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인디고 서원'지하 소극장. 이마에 빨간 점(빈디)과 네팔 전통복장(사리)을 한 젊은 여성을 포함, 외국인 14명과 한국 청소년 30여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서점의 독서토론모임 청소년들이 창간한 잡지 '인디고잉'국제판(격월간) 출판 기념회 모습이다. 참석한 외국인은 이 잡지의 국제 판매를 맡은 네팔 청소년 잡지 'Todays Youth Asia'의 산토시 샤흐(26) 편집장 일행이다. 최근 2000부를 찍어 미국.인도.네팔.파키스탄 등 세계 25개국에 보냈다. 한 부 가격은 4~5달러로 해외 저명 주간지와 비슷하다.

#6일 부산 해운대 누리마루 APEC하우스. 하버드대 출신의 사회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파머(40.스웨덴 웁살라 대학) 교수가 한국의 청소년 6명과 독서토론을 벌였다. 파머 교수가 쓴 '오늘의 세계적 가치'라는 책 내용을 놓고서였다. 동시통역으로 진행된 토론은 200여 명의 시민과 학부모들이 지켜봤다. 토론회에서 류성훈(17.부산외국어고 1년)군이 "한국 청소년들은 입시전쟁을 치른다. 어른들도 경제적.정치적 난관으로 힘들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고민을 털어 놓았다. 파머 교수는 "세상에는 서로 다른 삶이 공존하고 있다. 서로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역량을 기른다면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대답했다.

부산 인디고 서원의 독서토론회 회원인 청소년들이 어른들도 해내기 어려운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영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어떻게 세계적인 석학이 한국의 청소년들에 이끌려 한국까지 왔을까.

올 초 독서토론 모임에서 파머 교수의 책을 읽고 난 고교생 6명은 "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낸 뒤 4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갔다. 이들은 토론 결과를 영어로 번역한 자료를 만들어 파머 교수에게 보여줬다. 그러고는 파머 교수의 강의에 들어가 예리한 질문을 퍼부었다. 청소년들의 열정에 감동받은 이 석학은 초청에 기꺼이 응했다.

두 달 뒤엔 인터넷을 뒤지다 인디고잉과 비슷한 잡지 'Todays Youth Asia'를 발견한 청소년들은 카트만두까지 날아갔다. 인디고잉 3호(2007년 1월)에는 현대 세계 철학계의 거장인 슬라보예 지젝과 옥스퍼드 철학사전의 저자인 사이먼 블랙번의 원고가 실렸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메일로 원고료가 없음을 알렸는데도 열의에 감동해 흔쾌히 글을 보내줬다.

이 서원의 대표 허아람(36.여)씨가 2004년 8월 인문학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독서토론회 청소년들은 당초 30여 명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중.고생 회원 100명, 대학생 300명 등 400명으로 불어났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인문학 부흥의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파머 교수 초청을 중심으로 5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인문주간 행사는 청소년들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주최하는 행사에 응모, 행사비 1억5000만원을 받아내 진행했다.

부산=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인디고 서원=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인문학 전용 서점'을 표방하며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던 허아람(36.여)씨가 2004년 8월 문을 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여는 '주제와 변주'라는 이름의 독서토론회는 현재 28회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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