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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문제는 경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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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이 돼버린 쉐다곤 파고다는 원래 이 나라 불교의 최고 성지다. 2500년 전 부처가 공양의 대가로 두 상인에게 뽑아준 머리카락 여덟 개를 땅에 묻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이후 불심을 과시하려는 역대 왕들이 앞다퉈 금을 보시하며 황금탑의 위용을 갖춰갔다. 1988년 3000여 명의 목숨을 무참히 빼앗고 집권한 현 군사정권은 99년 이 파고다에 새로 금을 입히고 보석을 박았다. 이전 왕조처럼 자신들 역시 적법한 정권임을 인정받으려 벌인 한바탕 쇼였다. 파고다가 새 단장을 마치고 60t의 금과 5440여 개 다이아몬드 장식으로 빛나던 날, 신실한 국민은 숨죽인 채 하늘이 천둥번개로 응징의 뜻을 밝혀주길 기다렸다. 하늘은 잠잠했고 군부 지도자들은 기쁨에 겨워 외쳤다. “아웅 삐!(우리가 이겼다).”

2007년 미얀마 국민은 ‘하늘의 처분’만을 기다리진 않았다. 거리로 뛰쳐나와 총구와 맞선 이들의 저항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다. 탑 치장에 떼돈 들일 생각만 했지 백성의 배고픔은 헤아릴 줄 몰랐던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이라 명명된 이번 사태의 실상은 ‘민생 시위’다. 정치적 자유보다 일용할 먹거리가 더 절박한 게 미얀마의 현실이다. 국민 4분의 1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계를 꾸리고, 어린이 3분의 1이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쌀 값이 두 배로 뛴 올 2월 이미 거리 시위가 시작됐고, 8월 기름값(교통비)까지 올라 식비를 더 줄일 처지가 되자 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한다.

문제는 경제다. 사태의 본질이 이럴진대 해결책도 달리 강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군부의 유혈 진압이 시작되자 미국은 미얀마의 수출입을 틀어막는 기존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도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10년간 계속된 경제 제재의 최대 피해자는 군정 지도부가 아니라 바로 미얀마 국민이다. 서민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기에 “경제 제재는 군정에 맞설 수 있는 사회 계층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경영 컨설팅 회사인 태평양전략평가의 톰 그린 이사)는 지적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서방이 동의하든 않든 경제 제재라는 채찍은 이미 약발이 떨어졌다. 미얀마의 천연자원이 긴요한 아시아 국가들이 앞다퉈 ‘돈줄’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광물 연료만 5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한 한국은 중국·태국·인도 등에 이어 미얀마의 여덟 번째 교역 대상국이다. 경제발전이 최우선 순위인 이들 국가는 미국과 유럽의 힐난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정에 대한 쓴소리를 꺼리고 있다. 시위 현장에서 자국 언론인이 피살된 일본조차 제재에 동참하길 주저하는 판이다. 문제는 경제인 것이다.

그나마 기댈 곳은 중국이다. 서방이 베이징 올림픽 불참 카드까지 꺼내들고 중국더러 총대를 메라며 등을 떼미는 형국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군정 지도자들과 돈독한 우정을 나눠온 중국 정부가 별안간 채찍을 휘두를 리 없다. 게다가 자원이 곧 무기인 요즘엔 오히려 미얀마가 칼자루를 쥔 처지 아닌가. 그동안 으를 만큼 을렀으니 뭔가 달랠 수 있는 ‘당근’도 쥐여줘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악의 축’ 북한에 핵 불능화의 대가로 중유를 건넸듯 미얀마 군부에도 ‘변화의 값’을 지불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철권통치를 강행하는 군정 지도자들이 예뻐서가 절대 아니다. 어찌 해서든 그들의 마음을 돌려야만 미얀마 국민의 살림에도 숨통이 트이겠기에 생각해본 고육책이다. 이대로 가다간 각국이 눈치 보며 말싸움만 벌이다 미얀마인을 나락에 방치하고 말았던 88년이 재연되기 십상이다.

신예리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