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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덴마크 여왕 "자연 속 고궁 정취 원더풀"

중앙일보

입력

“헬로우(안녕하세요),유어 마제스티(Your Majestyㆍ여왕 폐하).”

10일 서울 창덕궁 경내를 거니는 마그레테 2세(67) 덴마크 여왕을 알아 본 학생들은 얼굴 가득 호기심을 발산하며 이렇게 인사했다. 가을 소풍 나온 학생들은 휴대폰 카메라에 여왕의 모습을 담으며 마냥 신기한 표정이었다. 덴마크 여왕은 6일부터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이다.

경기도 포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온 여학생은“동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덴마크 여왕이 우리나라 고궁을 돌아보는 모습을 보니 낯설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여왕의 동선을 따라 손을 흔들며 “덴마크 화이팅”을 잇따라 외쳤다. 주변의 일본 관광객들도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리며 한국 고궁에서 만난 뜻밖의 손님을 환대했다.

마그레테 여왕의 이날 행보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덴마크 국기 색깔인 붉은 색 모자와 스카프로 멋을 낸 여왕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은 역동적”이라며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 국민이 좀더 많이 교류하며 서로 잘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왕의 한국 방문 전 일정은 국영방송인‘덴마크TV2’등 11개 신문ㆍ방송에서 취재했다. 여왕을 따라 잠시 귀국한 이명수 주 덴마크 대사는 “덴마크에서 여왕의 해외 순방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요 뉴스”라며 “덴마크 세일즈 못지 않게 여왕을 통해 한국 알리기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후속 일정을 취소하며 당초 예정된 참관 시간을 30분 이상 넘기는 등 고궁의 매력에 빠졌다. 창덕궁 후원(비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여왕은 주변 경관을 돌아보며“원더풀(훌륭하다)”을 연발했다. 여왕은“감춰진 정원이라는 이름처럼 많은 비밀을 간직한 곳인 것 같다”며 감탄했다. 여왕은 이어 “유럽의 궁전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해 내부 장식에 치중하는 반면 창덕궁은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유럽에서 오는 손님들은 창덕궁의 정갈한 조경미에 매혹된다”고 거들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고고학과 미술을 공부한 여왕은 특히 창덕궁ㆍ비원의 건축 양식과 건물의 색채ㆍ문양에 큰 관심을 보였다. 6ㆍ25전쟁 참전국이기도 한 덴마크의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을 고려한 듯 여왕은 “이렇게 아름다운 창덕궁이 전쟁 중에 훼손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전쟁 때보다 일제시대에 더 많이 손상됐다는 안내원의 설명에 여왕은 “아…”하며 아쉬워했다.

산업시설 시찰과 경제단체 초청 만찬 등 빡빡한 일정 속해서 여유를 찾은 여왕은 유머 감각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창덕궁을 참관하던 여왕은 조선 왕조의 각종 의식이 치러졌던 인정전(仁政殿) 앞 품계석(관직 서열순으로 도열하도록 표시한 돌) 설명이 끝나자마자 수행하던 부총리와 정부 인사들에게 “저기가 당신들 자리랍니다.한번 서 보세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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