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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책 읽어라” 등떠밀지 말고 문학관서 작품 체험시켜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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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우리 아이가 책을 좀 가까이했으면….” 이런 바람을 갖는 부모가 한둘이 아닐 터다. 이럴 때 책을 주제로 한 나들이를 기획해 보면 어떨까. 책과 즐거운 체험을 한 아이들은 부모가 굳이 등을 떠밀지 않아도 절로 책을 집어들 것이다. 떠나기 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가서 무엇을 눈과 머리에 넣어 와야 할지, 다녀와서는 어떻게 되새겨보는 게 좋을지 등을 나들이 칼럼니스트 홍준희씨가 두 딸과 함께 알아봤다. 첫 회는 서울 명륜동 한무숙 문학관이다.

아이들과 문학관 나들이를 계획하면서 첫 번째로 한 일은 ‘문학관이란 어떤 곳인가’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문학관이란 문인들의 문학세계와 일상을 알아볼 수 있는 관련 작품과 유물을 모아 전시해 놓은 공간이란다.” 전국에 이런 문학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얼마나 있는지 아이들과 ‘전국 문학관 지도’를 만들어 봤다. 우리나라 모양이 그려진 백지도에 한국문학관협회(www.imhs.co.kr)에서 찾은 문학관 위치를 표시했다. 생각보다 수가 많아 아이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주말 하루 나들이 코스로 찾아가기 쉬우면서도 이색적인 문학관을 골라봤다. 서울 명륜동 한무숙 문학관이 눈에 띄었다. 사전준비를 위해 한무숙 문학관 홈페이지(www.hahnmoosook.com)를 살펴봤다. 소설가 한무숙씨가 40년을 기거하던 집을 작가가 별세한 1993년에 남편 김진흥씨가 문학관으로 개조했다. 한씨의 저서, 생활용품, 생전 친분을 나눴던 문인의 자취 등을 담아놓은 전시실과 작가의 집필실로 꾸며져 있다.

전화로 관람 예약을 한 후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모아 질문지를 만들었다. 홈페이지에서 약력을 읽어봤다. 큰아이는 ‘한무숙님은 우리나라 펜클럽 이사였다’는 내용을 보더니 “펜클럽이 뭐냐”고 물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둘째 아이는 “글 쓰는 것 외에 그림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던 작가가 그린 그림은 무엇일까 궁금하다”고 했다. 이렇게 질문지를 만들어 가면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 스스로 꼼꼼하게 전시장을 탐색한다. 엄마가 일일이 따라붙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드디어 3일 책 나들이를 떠났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가면 혜화로터리가 나온다. 반대편으로 길을 건너 혜화초등학교 쪽 길로 올라가다 보면 현대식 건물 사이로 한옥 한 채가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대문에는 ‘향정 한무숙기념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잠깐 숨을 돌렸다. 아이들은 마당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금붕어가 노니는 작은 연못도, 각종 야생화가 심어져 있는 화단도, 자갈을 깔아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마당길도 아이들에게는 다 새로운가 보다. 고인의 호인 향정을 닮은 정원은 사시사철 향기로움이 끊이지 않을 것 같았다.

전시실에는 한 선생의 대표작 ‘역사는 흐른다’ ‘만남’ ‘월운’ ‘빛의 계단’ ‘생인손’ 등이 전시돼 있었다. 여행을 좋아했던 작가의 여러 유품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과거의 여권과 오늘날의 여권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봤다. “엄마, 옛날에는 여권에 키가 얼마인지도 썼나 봐.” 여행을 다니며 꼼꼼히 기록한 작은 수첩들, 손때 묻은 만년필, 오래된 편지, 옛날 전화기, 라디오, 녹음기 등 추억의 물건들이 사회 시간에 ‘옛날과 오늘날의 모습’을 배우는 초등 3학년 둘째에게 좋은 공부가 될 듯싶었다.

전시물을 둘러본 후 고풍스러운 응접실에 앉아 학예사로부터 작가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돌아오는 내내 아이들은 한옥 마당과 빗물받이 통, 꼬불꼬불 올라가던 집필실 계단 등에 대해 재잘거렸다. 한무숙 문학관에 다녀와서 큰아이는 ‘나만의 직업사전’을 새로 만들었다.나들이에서 만난 사람들의 직업을 조사하는 것이다. 작가·학예사·문학관 관장 등을 새로 추가했다. 누가 어떤 일을 하는지 상세하게 소개하고 인터뷰한 내용, 참고한 인터넷 사이트도 적어 넣었다. 둘째는 직업사전 대신 ‘사인 북’을 만들어 방문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서명과 명함을 모아놓는다. 한옥이 주는 아름다움과 편안함, 그 속에 자리한 한 작가의 진솔한 삶과 그를 추억하는 가족들의 사랑어린 모습. 바쁜 세상에서 잃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나들이였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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